“어머니의 일생은 평범했지만 혁명과 교육사업에 모든 것을 바쳤다. 큰 공적은 없었지만 명리(名利)에 담백했고 일찍 사별한 남편 리숴쉰(李碩勛)을 평생토록 사랑했다.”
올 3월 퇴임을 앞둔 리펑(李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사모곡(思母曲)이 21일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언론에 일제히 실려 그 배경에 중국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의 어머니 자오쥔타오(趙君陶)를 기념하며’라는 제목의 이 글은 중국 공산당 초창기 혁명열사였던 자오쥔타오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충칭(重慶)시에서 기념 좌담회가 열리고 있는 데 대해 리펑 위원장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리 위원장은 5000여자 분량의 이 글에서 1931년 국민당군에 체포돼 28세의 젊은 나이로 희생된 부친 리숴쉰이 옥중에서 처형되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유서에서 세살배기 아들을 잘 키워 달라는 눈물어린 당부를 했다고 소개했다. 또 홀로 된 어머니가 남편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고난 속에서 강인한 한평생을 살았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재혼하지 않았던 것은 봉건 전통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를 너무나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병으로 숨지기 직전 아버지와 처음 사랑을 속삭였던 항저우(杭州) 시즈후(西子湖)를 마지막으로 찾아 남편에 대한 절절한 회상에 젖기도 했다.”
그는 이어 공산혁명의 어려운 시기에 어머니가 자식 교육에 남달리 애썼던 일, 공직 생활을 할 때 사사로이 찾아오지 못하게 했던 일 등을 자세히 묘사했다.
리 위원장의 어머니는 자오스옌(趙世炎)을 비롯한 오빠 5명이 공산혁명에 투신했던 혁명가정 출신으로 1939년부터 문화혁명 때까지 줄곧 공산당 간부 자녀들의 보육 및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리 위원장의 사모곡이 소개된 배경을 놓고 일각에선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했던 그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라는 정치적 해석도 있으나 “퇴임하는 원로에 대한 예우일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의 어머니 얘기는 중국 공산당 당사(黨史)에 자세히 실려 있어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w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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