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美軍 철수' 발언논란]美강경파 盧정부 길들이기인가

  • 입력 2003년 2월 7일 19시 09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방미단장인 정대철(鄭大哲) 의원의 방미 시점을 전후해 더욱 심해졌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3일 특사단을 만나 한미동맹의 ‘균형 재조정(rebalance)’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한미 동맹관계가 좀 더 성숙하고 균형 있게 조정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럼즈펠드 장관은 특히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한 한강 이북의 주한 미군기지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표시했다고 공개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한강 이북에 있는 미군기지의 이동이나 재배치를 언급한 것은 미 2사단의 감축 또는 후방배치여부가 핵심이며 이는 사실상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국회의원들이 최근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도 제기됐다.

한화갑(韓和甲·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미 하원 원내총무인 로이 블런트 의원은 ‘한국 국민이 원한다면’ 미국은 언제든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7일 ‘럼즈펠드 장관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 관련 보도에 대해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한미동맹의 재정립 논의는 지난해 말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당장 내달부터 한미 양국간에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어떻게 보면 새로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문제의 본질은 사실관계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노 당선자의 취임을 앞둔 현 시점에서 왜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미 의회가 89년 냉전종식의 분위기 속에서 ‘넌-워너 수정안’을 통과시키면서 3단계 주한미군 조정안을 마련할 때부터 이미 공개된 사안이다. 그러나 이 논의는 93년 북한 핵 위기가 불거지고 한국측도 반대해 중단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 속에 오히려 미군철수문제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군체계를 해군과 공군 위주의 신속대응군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주한미군도 이 같은 전략적 변화에 따라 조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촛불시위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온 것은 미국측에서 볼 때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한미동맹의 ‘재조정’ 작업에 들어가 실제로 주한미군기지를 이전할 경우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이 경우 ‘한국이 원해서’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경비의 상당부분을 조정을 원하는 한국쪽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미군은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최근의 논란을 두고 정부 안팎에선 ‘미 강경파의 새 정부 길들이기’로 보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노 당선자가 그동안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한 데 대한 미측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아직은 한미동맹의 재조정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미간의 의견 차가 깊어질 경우 자칫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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