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 두 기류]눈앞의 開戰 VS 커가는 反戰

  • 입력 2003년 2월 14일 19시 00분


▼눈앞의 開戰▼

미국을 겨냥한 대규모 후속 테러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은 13일 생화학 및 핵 테러에 대비해 사실상의 준(準)전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알 카에다 테러 2건 준비 중=지난주 미국이 테러경계령을 ‘코드 오렌지’로 격상한 것은 알 카에다가 미국 내 1건을 포함해 2건의 테러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기관의 결론에 따른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

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최근 입수된 증거들이 알 카에다의 테러가 계획 단계를 넘어 조직원들을 미국과 아라비아반도에 보내 공격을 준비하는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현 단계에서 공격시기와 목표, 방법 등은 정확히 포착되지 않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준전시 상태=국토안보부와 국방부, 군 당국은 이날 백악관, 의사당, 워싱턴 기념탑을 비롯한 주요 공공건물 및 기념물, 인구 밀집지역에 스팅어 대공미사일을 배치하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 병력을 배치했다. 또 대재앙 발생시 사용할 주민대피 방공호와 시민대피로 지정 등 긴급 비상대피 지침을 내렸다.

공군은 워싱턴 상공 초계비행을 강화했고, 미 연방수사국(FBI)도 1만8000명에 이르는 지방치안병력에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대(對)테러 연방기관들은 또 가정과 상가, 공공건물에 대해 별도의 안전비상대피소를 마련하고 생화학가스 및 방사능 물질의 유입을 막기 위한 특수테이프와 3일분 이상의 비상식량, 물, 전지, 라디오, 의료품 등을 구비할 것을 권고했다. 워싱턴과 인근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의 일부 시민은 대피호를 마련하거나 비상용품 사재기에 나서 긴박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도 테러 경계령=영국 정부가 11일부터 공항 등 주요 시설물에 대한 특별 경계를 펴고 있는 가운데 영국 경찰은 수류탄을 숨겨 반입하려던 베네수엘라인 등 7명의 테러 용의자를 공항 및 공항 주변에서 검거했다고 14일 밝혔다.

또 이날 히스로 공항에서는 수상한 가방이 발견돼 한때 국제선 제2터미널 일부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아프리카와 중동행 일부 항공편이 지연되는 소동을 빚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커가는 反戰▼

미국 영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해지자 반전(反戰)여론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자원해서 ‘인간방패’가 되겠다는 평화운동가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고 세계 유명인사들의 반전 메시지도 잇따르고 있다.

▽‘인간방패’ 바그다드로=이라크 민간 시설물에 대한 인간방패를 자원한 14명의 외국 민간인이 11일 바그다드에 도착한데 이어 수십명의 자원자들이 13일 터키 주재 이라크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았다. 이들은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방패가 돼줄 것을 요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방패 자원자들은 바그다드 중심부를 흐르는 티그리스강 다리에 ‘여기를 폭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바그다드 시내 공공건물에도 반전 깃발을 달았다.

▽반전 시위=15일에는 뉴욕과 런던 카이로 요하네스버그 등 전 세계 3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수백만명이 참가하는 지구촌 최대 규모의 이라크전쟁 반대 연합시위가 벌어진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내 약 200개 반전단체들이 결성한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합’이 주도하는 뉴욕 맨해튼 시위에는 수십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 배우 수잔 서랜던과 대니 글로버 등이 반전 연설을 하고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도 자리를 같이하기로 했다.

영국 BBC 방송은 13일 베를린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오른 ‘25번째 시간(25th Hour)’의 스파이크 리 감독과 주연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을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유엔도 우회적으로 거들어=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13일 “이라크전쟁은 6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드 루버스 고등판무관은 1991년 제1차 걸프전 기간에 200만명이 이란 및 터키와 접한 이라크 국경지대로 피난했다는 것을 상기시킨 뒤 이같이 말했다.

유엔이 발간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2300만명의 이라크 국민은 후세인 정부가 제공하는 식량배급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식량배급 체제가 붕괴될 경우 6주를 버티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쟁이 일어나면 이라크인 50만명이 진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시마 겐조 유엔사무차장은 이날 전쟁 발발시 비상구호자금 1억2000만달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美-英 “유엔도 나서라”… 佛-獨 “유엔에 맡겨라”▼

‘이라크 공격축 대 전쟁 반대축.’

미국 영국 등 개전축(開戰軸)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반전축(反戰軸)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자칫 서방세계의 균열이 고착화될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다. 14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유엔 무기사찰단의 2차 실태보고가 예상과 달리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이 같은 대결 국면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팽팽한 주장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3일 플로리다의 한 해군기지를 방문해 반전연대를 겨냥, “유엔이 비효율적이고 무책임한 논쟁을 벌이는 조직으로 전락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자유국가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라크에서 허용 사거리를 초과한 미사일이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이날 상원에서 “이라크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며 “이라크의 무장해제는 사찰을 강화해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유엔결의 1441호는 자동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조항이 전혀 없다”면서 프랑스를 거들었고, 뉴욕을 방문 중인 유리 페도토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라크 미사일의 사거리 초과 의혹과 관련, “지난해 말 이라크 보고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2차 실태보고, 수위 낮을 듯=미국 CBS방송은 13일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이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공개할 2차 사찰보고는 ‘미국의 희망과 달리’ 이라크에 대한 비난 수위가 낮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블릭스 사찰단장이 안보리 내 비둘기파로부터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을 완화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릭스 단장은 보고를 통해 이라크가 무기사찰에 새롭게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음도 지적할 것이라고 방송은 덧붙였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英誌 “블레어 여론 무시… 불타는 다리에 서있다”▼

‘불타는 다리 위에 서 있는 남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3일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블레어 총리가 이미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영국은 미국과 유럽을 잇는 다리가 돼야 한다’는 그의 정책 기조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2주 전만 해도 이 잡지는 블레어의 정치적 입지는 불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라크전 참전 법안의 하원 통과가 확실하고, 영국 군인들이 전투에 참가하면 애국심이 모든 우려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2주 사이에 상황은 변했다. 영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이라크 관련 정보 문서가 미국 대학원생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쟁에 대한 냉소주의가 번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영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참전할 수 있다’는 의견은 9%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34%, 1월의 22%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번주 영국의 대테러 경찰과 탱크부대원 1500명이 갑자기 히드로공항에 출동했다. 정부는 테러분자들의 미사일 공격 우려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국민 대부분의 반응은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자작극일지 모른다’였다.

블레어 총리의 오랜 친구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그가 한때 그렇게 집착했던 자신에 대한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국내 평가에 초연하려 해도 영국을 ‘미국과 유럽을 잇는 다리’로 만들겠다는 그의 정책 기조가 흔들려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 다리를 놓기엔 두 대륙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버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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