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 장관은 대표적인 대북(對北) 강경론자로 선제 군사공격 가능성을 자주 시사해 왔다. 선제 공격의 난점 중 하나는 한국에 주둔해 있는 3만7000명의 미군. 북한이 미국의 북폭에 맞서 한국을 공격한다면 주한미군도 사거리에 들어간다.
지난해 말 한국의 반미 시위에 자극 받은 미국의 보수논객들은 감정적 차원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을 합창해 왔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북한의 위협을 억지해야 할 주한미군이 오히려 북폭을 어렵게 만드는 인질의 역할로 전락했기 때문에 미 지상군을 한반도에서 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럼즈펠드 장관의 주한미군 감축론을 북한 폭격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기는 어렵다. 감축론과 철수론은 다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일부가 철수한다고 해서 그동안 북한의 남침시 자동개입을 보장해 준 ‘인계철선’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방위를 책임지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약화돼 보이는 측면 때문에 여전히 감축론조차 민감한 사안. 특히 휴전선 부근의 미군을 철수시키거나 후방에 배치할 경우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지난해 12월30일 한국군 지휘부에 “(주한 미군의) 감축전력을 한국이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가”라고 질문해 잠시 주목을 받았다.
럼즈펠드 장관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해·공군력을 증강시키고 지상 병력은 기동성을 강화해 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으로 감축 방향을 설명했다. 2001년 미국의 ‘4개년 국방 검토보고서(QDR)’에서도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위기 발생시 ‘가벼우면서도 기동성 있는 전력’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이 표명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한국군으로서는 해·공군력의 미군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는 반면, 지상군은 더욱 비대해져 국방의 자립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는 문제가 있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한국의 요구는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미 용산기지를 비롯해 도심에 위치한 미군부대의 재배치를 희망하는 데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한미관계가 돈독한 상황에서도 민감하게 다루어질 문제인 주한미군 감축론이 양국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제기된 배경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방위를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한계와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국방부 "구체적 협의 없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상원외교위 발언과 관련, 국방부는 14일 “현재까지 한미 양국간 주한미군의 규모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배포한 성명에서 “한미 국방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공동협의 계획을 갖고 3, 4월경 첫 회의 개최를 추진 중”이라며 “이를 통해 한미 군사관계 및 주한미군 규모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이 새로운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밝힌 것이 아니라 지난해 말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공동 서명한 ‘주한미군의 미래 구상 연구’를 거론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2년간 공동연구를 통해 한미동맹의 미래상이 정립되면 그에 따라 주한미군의 규모와 지휘체계, 전력 변화가 결정될 것”이라며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단기간 내에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이나 철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미국이 90년대 초 걸프전 이후 첨단군사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에 주둔 중인 미 지상군 전력을 대폭 축소하고 해·공군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력 개편(transfor-mation)을 추진 중인데 주한미군도 결국 그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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