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VS 부시]"결의안 또 거부"…"이라크戰 강행"

  • 동아일보
  • 입력 2003년 2월 19일 18시 24분



▼시라크 "결의안 또 거부"▼

‘부패 정치인에서 노벨상 후보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18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라크전쟁 반대를 주도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1년 전만 해도 대선을 앞둔 시라크 대통령은 뇌물 수수 및 정치자금 유용 등 각종 부패 의혹에 시달렸다. 지난해 4월에 치러진 대선 1차투표 지지율도 20% 미만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1년도 안 돼 국내 지지율이 60%를 넘는 데다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른 것은 재선 이후의 눈부신 반전(反戰) 외교 덕분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한 번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이라크전쟁을 결행하려던 미국을 저지하고 2단계 결의를 관철시켰다. 이어 2차 결의안에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 미국과 영국의 2차 결의안 제출을 미루게 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말 이후 세계적으로 반전 시위가 격화되면서 프랑스 신문 표현대로 일약 ‘반전축(軸)’의 거두로 부상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반전의 날을 세울까. 먼저 국내 정치적 요인을 들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의 80% 이상이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데다 프랑스 거주자 가운데 800만명 안팎이 아랍계다. 그의 정치적 뿌리가 정통 드골파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66년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조직 탈퇴를 선언한 뒤 프랑스를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유럽연합(EU) 확대로 중·동유럽 친미(親美)국가의 대거 EU 가입에 따라 유럽 내 영향력이 축소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는 게 유럽 언론의 분석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프랑스가 EU 장악을 위해 독일과의 ‘2강구도’를 강화해 다른 나라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이 2차 결의안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다음날인 18일 장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지금은 거부권 행사를 말할 때가 아니다”고 ‘물타기’ 발언을 했다. 시라크 대통령 자신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라크 무장해제가 성공한다면 미국 덕분”이라고 미국에 화해 제스처를 보냈다.
이는 이라크 공격이 확실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할 경우 서방 세계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유럽 언론들은 전했다. 프랑스 언론은 미국의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 움직임 및 미국의 이라크전쟁 승리 후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60여개 프랑스 기업의 전후 입지 등도 시라크 대통령과 라파랭 총리의 ‘이중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부시 "이라크戰 강행"▼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국내외의 대규모 반전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겨냥한 개전(開戰) 행보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반전시위 규모에 개의치 않겠다면서 “지도자의 역할은 안보, 특히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안보에 토대를 두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에 직면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차 결의가 유용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사담 후세인이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번주나 다음주로 예상되는 안보리 2차 결의안이 나오는 대로 현 상황을 정면 강공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의 한 관리도 미국이 유엔 결의에 대한 이라크의 ‘중대한 위반’이 심해졌다고 선언하는 매우 강력한 새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리는 “새 결의안은 지난해 12월 8일 이라크가 제출한 핵 및 생화학무기 실태보고서에서 누락된 부분을 지적하고 이라크가 유엔이 설정한 사거리 한도 150㎞를 초과하는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는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의 안보리 보고 내용을 인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론도 강경론에 가세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9일자 사설에서 “이라크 사찰단의 2차 안보리 보고는 유엔이 스스로의 결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기구임을 여실히 드러냈다”면서 “이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보다는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형 화물선 3척을 추적 중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이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들 선박이 후세인 정권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 부시 대통령은 국가적인 이슈를 다룰 때 엄격한 선과 악의 잣대를 적용하고 있으며, 도덕과 시민의 의무에 관한 ‘설교적’ 표현들을 자주 포함시키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런 점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비위를 맞추려는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일부에서는 못마땅해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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