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주룽지총리 '퇴위'…마지막 업무보고에 박수물결

  • 입력 2003년 3월 5일 19시 20분


“공직자들에게 인민의 공복임을 언제나 잊지 말고 열성껏 직책을 다하며, 대담하게 참말을 하고 미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정무를 엄격히 수행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5일 개막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정부 공작(업무)보고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이번 전인대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고별사나 다름없었던 그의 공작보고를 경청하던 2900여명의 대표들은 수십 차례의 박수로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중국 경제의 차르(황제)’ ‘철면(鐵面) 재상’ ‘중국의 케인스’ 등으로 불리며 1990년대 중국 경제를 진두지휘해 온 주 총리. 문화대혁명기 우파분자로 몰려 두 차례나 하방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발탁돼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정책으로 실현한 인물로 평가된다.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 경제와 중국 인민의 자신감은 주 총리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역풍 속에서 1998년 3월 출범한 주룽지 내각은 거시경제 정책과 대담한 경제개혁을 통해 5년간 연평균 7.6%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9, 10일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주 총리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례적으로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 2분간이나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그는 총리 재임시절 국유기업의 구조조정, 과열된 중국 경제의 연착륙, 정부 기구개편, 부정부패 척결 등 산적한 문제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주 총리는 총리 취임회견에서 국유기업과 금융, 행정기구 등 3대 개혁과제를 제시하며 “앞에 지뢰밭이 놓였건, 천길 낭떠러지가 있건 옳은 일이라면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였었다.

5년간 국유기업 노동자의 3분의 1인 약 4000만명과 공무원 100만명을 잘라냈다. 숙원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도 성공했다. 개혁에 저항하는 부패관료와 기득권층은 철퇴를 맞았다.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부패한 자들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 부패자들과 함께 지옥으로 가는 대신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다.”

1994년 7월 당시 리펑(李鵬) 총리의 병가로 사실상 총리 역할을 수행하던 주 부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한 이 말은 아직도 중국 인민의 가슴에 각인돼 있다.

하지만 개혁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실업자는 1000여만명으로 늘어난 상태고 농촌과 도시, 계층간 소득 격차는 사회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국가 재정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 총리는 1월 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퇴진하면 문을 걸어 잠그고 책만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정계 입문 전 모교인 칭화(淸華)대 경제관리학원장으로 재직했던 만큼 후배 양성에 마지막 인생을 바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주룽지 말…말…말…▼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부패한 자들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 부패자들과 함께 지옥으로 가는 대신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다."

▶"앞에 지뢰밭이 놓였건, 천길 낭떠러지가 있건 옳은 일이라면 뒤돌아보지 않겠다."

▶"인민의 공복임을 잊지 말고 열성껏 직책을 다하며, 대담하게 참말을 하고 미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정무를 엄격히 수행하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