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이 협약에 적극 참여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미 격월간지 마더 존스 3·4월호는 선회 당시 미측 협상대표였던 토머스 노보트니 미 공중위생 부국장의 증언과 관련 기록을 인용, 미 최대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의 로비로 입장이 바뀌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 격월간지에 따르면 2001년 5월 협상을 위해 제네바에 머무르던 노보트니 부국장은 한밤중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미 세계건강국(OGHA)의 신임 국장 윌리엄 스타이거였다. 그는 담배산업에 대한 주요 규제들에 대해 반대하라고 지시했다. 노보트니 부국장은 “너무 놀라 망연자실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스타이거 국장은 특히 ‘저타르(low-tar)’ ‘마일드(mild) ’ ‘라이트(light)’와 같은 표현들의 금지조항에 반대하라고 주문했다. 이 표현들은 니코틴이나 타르가 다른 담배보다 적게 들어간 것으로 흡연자들이 오인할 우려가 있어 금지대상에 올랐다.
미국측이 반대 이유로 내세운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것. 미국은 그러나 미국과 같은 국가들에는 이 조항의 채택을 유보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타협안마저 거부했다.
본질적인 이유는 딴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전화에 앞서 6주 전 필립 모리스는 이 협약에 관한 자사의 입장을 정리한 32쪽짜리 보고서를 행정부에 제출했다. 한달 뒤 필립 모리스는 5만7764달러를 공화당에 기부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필립 모리스가 협약에서 삭제를 요구한 11개항 중 10개항의 삭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헬리 왁스먼 하원의원(민주)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필립 모리스가 부시 행정부에 미치고 있는 음흉한 영향력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WHO 170여개 회원국 대표들은 1일 제네바에서 ‘저타르’ 등의 표현을 금지하는 것을 비롯, 담배의 판촉과 광고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협약의 초안에 합의했다.
협약의 최종안은 5월 WHO 연례회의에 상정된다. 40개국 이상의 비준을 얻으면 발효될 수 있지만 미국은 비준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돼 세계 최대 담배수출국이 참여하지 않는 절름발이 협약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와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 협약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바꿔 잇따라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간다 환경단체의 대표인 필립 카루가바는 “미국은 자국 내에서는 흡연을 엄격히 규제하면서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그런 규제를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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