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대(對)언론 테러는 끝내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에 빠지게 됐다. 1980년대 ‘일본판 언론 탄압’으로 불렸던 아사히신문 상대의 테러범행 가운데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가 11일 오전 0시로 만료된 것.
1988년 3월12일 아사히신문 시즈오카(靜岡)지국 주차장에서 시한폭탄이 불발된 채 발견됐다. 곧바로 적보대(赤報隊)라는 단체가 “반일 분자를 처벌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경찰은 성명의 내용으로 미뤄 아사히신문의 진보적 논조에 불만을 품은 극우파의 소행으로 보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 사건은 일련의 언론사 협박사건 중 처음으로 다중살상용 폭탄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도쿄 시내의 한 기업체 사장 집에 총탄을 쏜 뒤 “아사히신문에 광고를 내지 말라”고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우익 정치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86, 87년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장을 받았다. 87년엔 아사히신문 한신(阪神)지국에 총을 든 괴한이 난입해 기자 2명을 살상하는 사건도 발생했지만 경찰은 단 한 건의 범인도 검거하지 못했다.
일본 언론계는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특별취재반을 편성해 범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경찰에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아사히의 경쟁지인 요미우리와 마이니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이니치신문의 마키 다로(牧太郞) 편집위원은 “이 사건은 조직의 논리에 매몰된 광기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며 “법적인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취재시효까지 만료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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