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8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최후통첩을 담은 대국민 연설을 한 직후 미국의 공영 TV인 PBS는 긴급히 역사학자 네 명의 좌담을 마련해 이번 연설의 의미를 짚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전 때 부시와 앨 고어 후보간의 토론을 진행했던 짐 레어가 사회를 맡은 이날 좌담에는 미국외교사 전문가인 보스턴대의 로버트 달렉 교수, ‘미국 민중사(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의 저자인 하워드 진 명예교수, 미국 외교자문위의 월터 러셀 미드, ‘버터와 총’ 등의 저서로 냉전시대 미국 외교를 연구해온 예일대의 다이언 쿤츠가 참여했다. 네 명의 역사학자들은 반전과 전쟁 지지로 입장이 갈려 연설문의 의미를 사뭇 다르게 해석했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지금까지 미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며 연설 이전과 이후의 미국사를 가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 선포된 것이다.
● 새로운 미국, 부시독트린의 천명
하워드 진 교수는 대 이라크 전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실제로) 미국을 침공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도 않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의 정치분석담당인 데이비드 생어 기자도 이른바 ‘부시 독트린’의 핵심을 연설의 다음과 같은 부분으로 짚었다.
“(테러 집단이나 테러 국가가 어떤 형식적인 전쟁선언도 없이 공격하는 이런 시대에) 적이 공격한 뒤에야 대응하는 것은 자위(自衛)가 아니라 자살행위다(… responding to such enemies only after they have struck first is not self-defense, it is suicide).”
지난 50여년간 미국은 2차대전, 6·25 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에 참전했지만 ‘상대의 도발 없이 선제공격(pre-emptive military action)을 하지 않는다’는 명분만은 고수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자국의 그리고 세계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연설에서 명백해진 또 하나는 독자방위(self-defense) 원칙이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이제 우리가 나선다(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has not lived up to its responsibilities, so we will rise to ours)” 고 선언했다.
유엔의 결의를 군사행동을 통해서라도 결행하라고 인정해줄 수 있는 유엔 내의 유일한 기구가 안보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이라크의 즉각적이며 무조건적인 무장해제’를 골자로 하는 유엔결의 1441호를 이끌어냈다. 이라크가 이를 거부했을 때 유엔의 이름으로 무력을 통해서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보리 동의까지 얻어내지는 못했다.
2차대전 후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과 국제평화’를 내걸고 유엔 창설을 주도했던 것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부시 대통령의 독자 행동 선언은 과거 미국 외교전통으로부터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버드대의 스탠리 호프만 교수는 이번 연설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유엔 회원국들의 전쟁 억지 노력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 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PBS의 좌담회에서 다이언 쿤츠는 부시의 이번 연설 내용을 “(외교정책상의) 진화”라고 평가하면서 “부시가 세계 안전보장에 관해 윌슨 대통령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해석했다.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의 제창자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미군을 프랑스에 파병함으로써 1차대전에 참전하며 “우리는 이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릴 것이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산 이라크 사람들을 해방하고 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우리 군이 위험해지는 것을 감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역사학자 도널드 밀러 주니어 등은 “윌슨 대통령의 원칙은 건국 이래 미국의 외교전통이었던 ‘간섭받지도 않으며 간섭하지도 않는다’를 포기함으로써 미국을 공화국(republic)에서 제국(empire)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선전포고’와 ‘무력사용승인’
17일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최후통첩(ultimatum)’이라는 표현을, 동아일보 등 한국의 언론들은 ‘사실상의 선전포고’라는 설명을 달았다. 그러나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목은 ‘대국민 연설(Address to the Nation)’일 뿐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하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였지만 명시적으로 ‘선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declaration’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전쟁 선포는 의회가 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은 의회에 전쟁선포를 요청(request)할 수 있다. 미국의 전쟁선포는 2차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이튿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에 출석해 “어제, 1941년 12월 7일은 치욕으로 남을 날입니다…”라는 연설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청했다. 의회는 반대 1표로 전쟁선포를 결의했다. 사흘 후인 12월 11일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해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번에는 의회에 편지를 보내 선포를 요청했고 의회는 이를 결의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없었다.
미국 대통령은 전쟁선포를 할 수는 없지만 군 최고 사령관(commander-in-chief)으로서 의회에 전투지로 미군을 파병하는 등의 무력사용 승인을 요청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상하원의 승인을 얻어냈다.
‘의회가 유일하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상의 규정은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미국 의회는 ‘전쟁선포’ 대신 전쟁선포보다는 ‘약식’인 군 부대 파병 등을 승인해 왔다. 부시 대통령도 의회에 전쟁선포를 요청하지 않았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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