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올게 왔다" 방공호에 숨은 이라크

  • 입력 2003년 3월 20일 18시 34분


▼바그다드 표정▼

공습 초기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는 미군의 제한적 정밀폭격 때문인지 예상보다는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미군의 공격을 피해 고속도로로 쏟아져 나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다음은 이들이 전하는 공격 전후의 긴장 속 바그다드 모습.

바드다드에 첫 전쟁 신호인 공습사이렌이 울린 것은 현지 시간으로 20일 오전 5시반(한국시간 오전 11시반). 곧 대공화기의 발사음과 폭발음이 들렸고 바그다드의 하늘에 노란 불꽃이 명멸했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으나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폭발이 이어졌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치솟던 불길과 폭발이 멈추고 도시는 정적에 빠져들었다. 미약하게나마 들리는 것은 이슬람사원 모스크에서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뿐이었다.

오전 6시7분 동이 튼 후 차량 몇 대가 도로를 질주했으나 보행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알 자지라 TV 방송에 따르면 전쟁 개시를 알리는 “오늘은 당신들이 기다려 오던 날”이라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연설이 이라크에도 방송됐다.

아침이 밝으면서 승용차와 버스 등이 평소처럼 운행하는 등 일시 평온을 되찾았다.

니혼TV, 후지TV 등은 바그다드 현지 취재진과의 화상전화 통화에서 “바그다드 중심부는 매우 조용하며, 전기 및 수도 등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오전 8시 직전 공습경보 해제 사이렌이 바그다드 전역에 울렸다.

그러나 이후 다시 공습이 시작됐고 바그다드 시민들은 방공호 등에서 숨을 죽이며 악몽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이에 앞서 공격이 개시되기 전 바그다드 도로는 밤새 인적이 끊겼고, 상가도 모두 철시해 거리는 죽은 도시와도 같았다. 군사적 대응 움직임도 겉으로는 포착되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생수와 양초, 비상 식량 등을 구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줄을 서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소유하고 있는 최고시청률의 알 사바브 방송에서는 미국 스릴러 영화 ‘더 길티’(미국 법조인이 여자 부하를 강간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평소 내쳐둔 아들을 고용한다는 내용)가 상영됐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대부분 “오늘 밤 우리는 폭탄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깨어 있을 것이다. 전쟁은 왔다 가지만 바그다드는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워싱턴 표정▼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전국에는 보안 경계 강화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집무에 들어가 하루 종일 백악관에 머무르면서 전쟁 준비를 지휘했다.

부시 대통령은 개전 발표를 앞두고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전시내각 구성원들을 소집해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하면서 개전 시점과 전략을 총점검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따로 불러 전략을 숙의했으며,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톰 리지 국토안보부 장관 등과 함께 예상되는 보복 테러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20일에도 백악관에 머무르면서 전쟁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져 이라크전쟁 지휘부가 사실상 백악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CNN을 비롯한 미국 TV들은 최후통첩 시한인 이날 오후 8시(한국시간 20일 오전 10시) 직후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오후 7시경부터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현지 상황을 중심으로 방송을 계속하며 대기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밤 시간에는 CNN, FOX, MSNBC 등 뉴스 전문 TV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송이 정규 방송을 했다. 이날 낮만 해도 백악관 주변에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으나 대부분의 시민은 일찍 귀가해 부시 대통령의 대(對)국민연설을 들었다. 연설이 시작된 시간에 워싱턴 중심부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라크전쟁에도 불구하고 이날 저녁 미국대학농구 토너먼트 경기가 예정대로 진행됐으며 23일의 아카데미상 시상식도 예정대로 개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요일인 23일 워싱턴에서 15개국 68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던 마라톤대회와 25, 26일 일본에서 열릴 미 메이저리그 개막전은 취소됐다.

리지 장관은 미국이 전쟁과 테러에 대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말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한편 미국은 19일 세계 전역의 미국인들에게 이라크가 전 세계에서 미국 시민들에게 테러 등 폭력 행위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경계령을 내렸다.

국무부는 잠재적 테러위협에는 생화학무기의 사용도 포함돼 있다고 경고하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살거나 이 지역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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