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美 프랭크스 사령관 VS 이라크 마지드 장군

  • 입력 2003년 3월 20일 19시 02분


▼美 프랭크스 사령관…재래식 정공법 선호▼

“토미 프랭크스는 노먼 슈워츠코프가 아닙니다.”

걸프 지역에 포진한 30여만명의 미군을 총지휘하는 토미 프랭크스 미국 중부군사령관(57·사진).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슈워츠코프 걸프전 당시 사령관과는 다르게 행동할 것임을 밝혔다. 매일 TV에 나온 슈워츠코프와는 달리 그는 되도록 언론 인터뷰를 피하고, 기자회견에서도 말을 아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TV 카메라나 수사(修辭)보다 군복과 야전 생활을 더 즐기는 그는 군 내부에서 ‘군인중의 군인(soldier's soldier)’으로 신망이 두텁다. 각종 군 행사에서 단상에 앉아있기보다 사병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임은 그를 ‘매우 현실주의적이고 거의 만족할 줄 모르며 승리를 필요이상으로 자신하지 않는 솔직한 군인’으로 평했다.

그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미묘한 간극이 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 럼즈펠드 장관은 프랭크스 사령관을 “상상력이 빈곤하고 틀에 박힌” 사람으로, 프랭크스 사령관은 럼즈펠드 장관을 “계산적인” 사람으로 본다. 럼즈펠드 장관은 첨단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습 위주의 ‘빠른’ 전쟁을, 프랭크스 사령관은 보병과 포병 위주의 전통적인 ‘힘있는’ 전쟁을 선호한다.

1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이 프랭크스 사령관에게 이라크 전쟁 전략을 물었을 때 그는 “5개 사단과 항공모함 5대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럼즈펠드 장관은 절반 이하면 충분하다고 일축했지만 현재 미군은 프랭크스 사령관의 말대로 배치돼 있다.

아프간전이 ‘프랭크스식’ 전쟁이었다면 이라크전은 ‘럼즈펠드식’ 전쟁에 가까울 전망. 개전 초기 대규모 공습에 이어 당초 중부사령부가 계획한 것 보다 더 일찍 특수부대 중심의 지상군이 바그다드로 거의 공습과 동시에 진입할 것으로 군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오클라호마주 윈우드에서 45년 6월17일 기계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을 텍사스 미드랜드에서 보냈다. 미드랜드는 부시 일가가 석유를 개발, 사막에서 미국 최대의 부촌으로 일궈놓은 곳. 로라 부시 대통령부인은 그의 고등학교 2년 후배다.

텍사스대학을 2년 다니다 중도탈락한 뒤 65년 이등병으로 입대한 그는 베트남전에 포병으로 참전해 3번이나 부상을 했다. 걸프전 참전 뒤 한국에서도 근무했다. 2000년 10월 중부사령관으로 취임해 아프간 전쟁을 주도했다.69년 캐서린 칼리와 결혼해 딸 재키와 손녀 두 명을 두고 있다. 손녀들은 그를 ‘곰돌이 푸’라고 부른다. 그는 얼마 전 기밀이 요구되는 기내 브리핑에 아내를 동반했다는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이라크 마지드 장군…'케미컬 알리' 악명▼

쿠웨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주력부대와 맞서고 있는 이라크 남부군의 사령관은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장군(사진)이다.

마지드 장군은 공격에 대비해 남부의 바스라 지역 곳곳의 방공호에 병력을 배치하는 수비형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지역은 이번 전쟁에서 공방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예상되는 곳 중 하나.

마지드는 국제사회에서 ‘케미컬(화학) 알리’로 악명 높다. 이란-이라크전 당시인 1988년 이라크 북부 하라브자시에서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 독가스 사용을 명령, 5000여명을 학살했던 전력 때문이다. 당시 그가 측근 부하들에게 “생화학 무기로 놈들(쿠르드족)을 모두 죽여버려! 국제사회는 저주스러울 뿐이야. 누가 그들의 말을 듣기나 할 것 같아?”라고 말한 대화 녹음 내용이 인권단체인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에 의해 공개돼 국제사회를 경악케 하기도 했다.

마지드 장군은 또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인 우다이, 쿠사이와 함께 미국이 이번 전쟁이 끝난 뒤 체포 또는 사살을 통해 제거대상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은 인물로도 꼽힌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국제사회의 처벌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지드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점령지 사령관을 지내며 사실상의 총독역할을 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면 측근도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 후세인 대통령에게 그가 변함없는 신임을 받고 있는 비결은 바로 그가 후세인과 생사를 함께 해온 ‘혁명 동지’이자 고향 티그리트에서 함께 자란 사촌동생이기 때문이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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