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과 특징▼
▽박종평 소장=미국은 ‘미국식 정의’를 내세워 이라크 공격을 단행했지만 뚜렷한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전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지, 과거 걸프전 등과 비교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의견을 말씀해 달라.
▽고성윤 실장=여러 면에서 기존 전쟁과 성격이 다르다. 국제사회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미국이 일방적으로 선택한 전쟁이다. 또 적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선제공격이다. 이는 미국의 신군사전략의 핵심이다. 냉전체제가 붕괴돼 적의 소재나 능력, 의도를 알 수 없게 됐다. 잠재적인 적을 지목해 예방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현숙 대표=적의 위협을 누가 판단하느냐가 문제다. 대량살상무기와 독재자를 제거하려는 전쟁이라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어 명분이 없다. 평화에 대한 전세계의 열망을 무시한 패권적인 전쟁이며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부도덕한 전쟁이다. 어떤 나라도 잠재위협에 대해 선제공격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각국이 군사력 증강으로 치닫게 될 우려가 있다.
▽이정민 교수=이번 전쟁이 국제법 등에서 문제는 있지만 후세인 정권 축출 이후 중동평화 구축이라는 과제에서 보면 불가피한 점이 있다. 후세인 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으며 자국민에게도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테러를 제도화했다. 1인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정권이다. 또 걸프전 때 약속한 대량무기 구입이나 개발 중단 등 평화노선을 지키지 않았다.
▽박 소장=‘자원의 충돌’이라는 관점도 있다. 이번 전쟁의 중요한 배경은 이라크가 가진 막대한 석유자원에 대한 지배권 다툼이다. 그 때문에 명분 없는 전쟁이 돼버렸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전 세계 반전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대표=세계를 움직이는 슈퍼파워는 미국과 세계여론, 두 가지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의 위력 덕분에 세계 시민의 정치의식이 매우 높아져 반전운동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전쟁을 막지 못했지만 집단성찰이나 앞으로 평화 구축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반전운동은 전쟁 협력 기업에 경제적 손해를 입히는 시민불복종으로 전환해 계속된다.
▼후세인 제거후 이라크▼
▽박 소장=이번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며 후세인 정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또 후세인 제거 후 이라크에는 어떤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보는가.
▽고 실장=미국의 군사작전은 미군 희생을 최소화하고 압도적인 물량작전으로 단기간에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용하는 정밀표적 공격폭탄은 하루 3000개 정도로 걸프전 때의 10배가 넘는다. 재래식 폭탄도 정확해졌다. 초기에 표적을 정확히 맞혀 지휘통신체계를 파괴할 것이다. 시가전을 원치 않기 때문에 지상군간 대규모 접전은 없을 것으로 본다. 6∼8주 내 종료를 예상하지만 더 짧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하거나 스커드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등의 변수다. 그 경우 장기전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사담 후세인이 제거된다고 하더라도 포스트 후세인이 문제다. 65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국가위원회는 후세인에 반대하는 데는 일치하지만 종교 민족적으로 복잡하다. 이들은 전후 방향에 대한 합의를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조기 민주정권 수립은 어려울 것이다. 국외서 활동하던 반정부 인사가 정권 수립에 가담한다고 해도 국민과의 공감대가 없어 상당한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미국이 전쟁에 이겼다고 해도 전후 캠페인에서 패배할 수 있다.
▽이 대표=전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또다시 내전이나 폭동 등 오랜 혼란도 예상된다. 또 이슬람권 전체에 반미감정이 끓어오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전쟁을 놓고 양분됐던 유엔이 얼마나 전후 복구에 긴밀한 협조를 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가 첫 희생자가 될 것이다. 난민문제도 심각하다.
▽이 교수=미국은 식량이나 의약품 등 이라크 전후 복구에 필요한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하나의 걱정은 쿠르드족 독립 문제다. 이들은 후세인 제거에는 동의했지만 궁극적 목표는 독립이다. 새로운 화약고가 될 소지가 있다.
▽박 소장=단기전으로 끝나 친미정권이 들어설 경우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도 주목된다. 이를 위해 미군은 상당기간 이라크에 주둔하려 할 텐데 이는 반미감정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번 전쟁이 세계질서를 어떻게 재편할 것으로 보는가.
▼세계질서 재편▼
▽고 실장=이번 전쟁은 자국중심 세계질서 구축이라는 미국의 원대한 세계운영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라크가 미국에 적대적으로 남아있는 한 중동에 대한 지배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라크 친미정권으로 중동 지배권을 확보하면 서, 북아프리카와 유럽, 중동 등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또 러시아와 중국의 진출이나 확장을 차단할 수 있다. 다만 이란과 시리아의 충돌 가능성이 남아있다. 지금까지는 이라크가 세력균형의 한 축이 돼왔지만 이 같은 균형이 붕괴될 수 있다.
▽이 교수=앞으로 20∼30년간 미국의 군사우위가 계속될 것이다. 또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세력이 없다. 예비대국인 중국도 더 이상 견제세력이 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인도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도 이미 미군이 진주해있고 동남아 국가들도 친미적이다. 유엔 안보리의 확대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일본이나 인도 브라질 등이 안보리 진출을 강력 희망하고 있다. 전쟁에 반대했던 프랑스 중국 러시아가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주목된다.
▽고 실장=프랑스 러시아 등이 전쟁에 반대했던 것은 이라크 석유개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는 수년간 이라크와 체결한 석유계약이 90억달러나 된다. 또 항공기와 탱크 등 무기를 이라크에 대량 판매해왔다. 프랑스도 이라크에 항공기 등을 팔아왔다.
▽이 대표=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하고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강화하면 중동에서 심리적으로 큰 갈등을 부를 것이다. 당장은 진압될 수 있지만 커다란 갈등의 씨앗이다. 테러 위협이 증대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유엔의 권위가 실추돼 기구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또 유엔 헌장이나 자위권 등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박 소장=부자세습 등 왕정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 영향을 미쳐 민주화 바람이 불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변화가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왕정이 지속된 것은 석유보호를 위한 미국의 힘 덕분이다. 전쟁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영향▼
▽이 대표=노무현 대통령은 참전 결정 이유로 한미동맹 우호관계와 경제적 측면, 미국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이 동맹이 아니라 종속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 반대 원칙을 지킨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들도 모두 경제적으로 어렵다. 또 부시 대통령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라크전 다음은 북한이라는 말도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한국이 가담하면 우리가 전쟁 위협에 처했을 때 세계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 교수=외교는 국가이익과 국민감정을 조화시키는, 현실의 선택이다. 이미 35개국이 직간접 지원을 약속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국제원자력기구, 유엔 안보리 등 모두 평화적 해결에 일치하고 있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승리해도 곧바로 북한을 공격한다고 보진 않는다.
▽고 실장=한국은 남북대치라는 특수한 안보환경에 있다. 공병부대의 비전투병력 파병은 적절한 판단으로 한미관계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북핵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파병을 비난, 반미정서를 확산하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책략을 쓸 것이다. 파병에 대한 찬반대립이 사회혼란까지 가서는 안된다.
▽이 대표=미국이 절대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반갑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평화적 해결의 여지를 남겨두고도 공격을 단행했다. 미국이 군사행동을 통한 문제해결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미국은 물론 북한을 협상에 끌어내려 당근과 채찍을 모두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압력을 가하는 것과 군사행동은 거리가 멀다. 한반도 전쟁 억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박 소장=국제사회가 지지하지 않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안타깝다. 중동에는 반미감정 일색이다. 한국의 파병이 반한감정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자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쟁이 무고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단시간 내에 끝나길 함께 기원하자.
정리=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박종평 소장 프로필▼
-1948년생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드대학 유학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중동정치)
-한국외대 중동문제연구소 소장, 전 중동학회 회장
▼이정민 교수 프로필▼
-1960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터프츠대학 플레처법외교학대학원
국제관계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RAND 정책분석관 역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현숙 대표 프로필▼
-1946년생
-이화여대 대학원 졸업(기독교학)
-크리스찬아카데미 여성부장 역임
-동북아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고성윤 실장 프로필▼
-1952년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노스텍사스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군사전략실장 겸
이라크상황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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