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화재 위성에 포착=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은 21일 “이라크군이 바스라 등 남부 지역에서 최대 30개의 유정에 고의로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원유가 매장된 유전에 시추시설을 설치해 원유를 뽑아 올리는 곳이 유정이다. 이 유정을 파괴하면 땅에서 솟아오르는 원유와 시설이 모두 불타 없어진다. 이는 곧 미군과 영국군의 향후 전비(戰費)를 충당할 석유의 생산 및 수출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뜻이다.
NBC방송은 21일 이라크 남부의 최대 유전지대인 바스라 인근에서 유정 화재로 인한 불기둥이 20일 오후 1시(현지시간) 미 해양대기국(NOAA) 극궤도 위성에 의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아랍계 위성방송인 알 아라비야는 바스라 서쪽 알루메일라 유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부근에서도 21일 화염이 치솟는 것이 목격됐으나 BBC방송은 미 특수군이 이 지역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방화 가능성=유정 화재가 이라크의 방화에 의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메르 라시드 이라크 석유장관은 21일 “화재 보도는 미국이 조작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미국은 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정에 방화했던 전례를 들어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달 초 이라크가 키르쿠크 유전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이라크는 걸프전 당시 화염으로 공습을 방해하고 수질을 오염시켜 미군의 식수 공급을 차단하며 유가를 폭등시켜 간접 압력을 행사할 의도를 갖고 불을 질렀다.
▽사상 최악 피해 예상=91년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유정 700개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함으로써 대규모 환경 재해를 일으켰다. 화재를 진압하는 데 7개월이 걸렸으며 정상 복구하는 데에만 2년에 걸쳐 500억달러가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유정이 1685곳으로 쿠웨이트의 2배에 이르고 유전이 내륙 산악지대에 밀집해 있어 소화용수를 끌어대기 힘든 여건을 들어 방화가 본격화되면 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바스라와 키르쿠크 모두 인구 밀집지역이어서 인명 피해도 클 전망. 미군은 수천명의 병력을 이라크 유전지대에 투입해 시설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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