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텅빈 거리…걸어잠근 상점…'죽음의 도시'

  • 입력 2003년 3월 21일 18시 44분


미국이 20일 밤(현지시간) 또 다시 공습에 나서기 전까지 바그다드 시내에는 하루 종일 적막감이 흘렀다.

아침 공습이 도심 빌딩들을 비켜간 탓에 피해는 별로 없었지만 길거리에서는 시민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뉴욕 타임스의 종군기자 존 번스는 바그다드 현지 르포에서 “정부 청사와 대통령궁 밖에 서 있는 초병들만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면서 “죽음을 예감한 군인들의 얼굴에는 체념과 무기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전날까지 문을 열었던 생필품점들도 이 날은 굳게 문을 걸어 잠갔다. 몇몇 상점들은 오전에 ‘용감하게’ 문을 열었으나 곧 철수했다. 한 상점 주인은 “대부분 도심 외곽에 사는 주민들이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아직 본격적인 공습을 시작도 안 했는데 바그다드는 벌써 ‘죽음의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바그다드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생사 여부. 공습 직후 TV에 나와 대미(對美) 항전의 의지를 밝힌 후세인 대통령이 평소에 착용하지 않는 검은 테 안경을 쓰는 등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불안한 시민들이 방공호에 모여 후세인 대통령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200여명의 외신기자들이 모인 기자회견에서 “후세인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라크 정부 관리들은 “그들은 바보 같은 살인자들”이라며 “후세인 암살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9시경 날카로운 공습 사이렌이 잇달아 울렸다. 폭격은 이로부터 10여분 후 시작됐다. 도심 호텔에 모여 있던 외국인들이 로비로 몰려나와 폭격 장면을 지켜봤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폭발이 이어졌다.

이날 주요 공습 목표는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티그리스강 동쪽의 기획부 청사. 아지즈 부총리는 이날 하루종일 집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아침 공습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던 공습이 끝나자 도시 전체는 연기에 뒤덮였다. 여기에 미·영 연합군의 국경 진입 소식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공습이 끝나자 한 시민은 “앞으로 얼마 동안 공습을 더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제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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