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戰爭]이라크人이 전하는 '공포의 바그다드'

  • 입력 2003년 3월 22일 19시 06분


21일 밤 9시경(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의 밤하늘이 갑자기 대낮처럼 훤해졌다. 지구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에 이어 수십m짜리 검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창 밖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2층에서 잠들어 있던 조카 무스타파(9)와 사라(5)가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다. 매형과 누나는 각각 아이 하나씩을 들쳐업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도심의 대통령궁에서 불과 5km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집은 너무 위험했다.

“아이들이라도 살려야지….” 매형은 멀지 않은 곳에서 불바다가 보이는데도 자동차를 몰아 30km가량 떨어진 자신의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KOTRA 바그다드무역관 현지직원 아흐메드 알 오베이디(30·사진)가 본보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밝힌 긴박한 순간이다.

부모와 누나 부부, 두 조카와 함께 사는 그는 벌써 며칠째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91년 걸프전으로 이미 공습사이렌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이렇게 빨리 엄청난 공격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밤새 폭격이 퍼부은 뒤의 새벽 거리는 살풍경했다. 인근 주택지의 폭격은 없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폭격으로 인한 먼지가 거리를 짓눌렀다. 누구 한사람 감히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한달 전 식을 올린 약혼녀와 매형,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에게 서둘러 전화했다. 모두들 간밤에 무사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알라께 감사….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20일 미군 공격이 시작된 뒤 일곱 식구는 밤마다 서로 부둥켜안고 공포를 달랬다. 아이들은 낮에도 삼촌인 그의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나쁜 기억을 없애 주려 계속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왜 미국이 쳐들어오는 거야” “우리나라가 뭘 잘못한 거야”라고 자주 물었다. 어두워지면 더 무서워하는 어린것들이 안쓰러워 며칠 전부터는 아예 수면제를 먹여 재운다.

아흐메드의 집은 2층 단독주택. 근처에 방공호가 있지만 “집 이외에는 믿을 곳이 없다”며 피하지 않고 있다. 걸프전 때 어린아이들과 여자, 노인들이 대피했던 방공호를 군사기지로 오인해 폭격했던 일이 있기 때문. 온 식구가 “폭격 맞아 죽더라도 차라리 집에서 죽는 게 낫다”는 각오다.

아흐메드와의 전화는 21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 7시까지 여러 차례 이뤄졌다. 전화통화 중에도 자주 폭음이 들렸다. 그럴 때마다 전화가 끊겨 몇 번이고 다시 걸어야 했다.

“지금 내 머리 위로는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어쩌면 오늘밤이면 우리 집에도 폭탄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미국은 결국 무력으로 바그다드를 초토화하겠지만 이라크를 지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직 폭격이 계속되던 새벽녘에 그가 남긴 말이다.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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