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이 철수하면서 쿠웨이트 유정에 불을 질렀고, 이로 인해 생긴 시커먼 연기로 대낮인데도 한밤중처럼 깜깜했던 모습. 그리고 수십개의 유정에서 치솟는 63빌딩 높이만한 불기둥들이 ‘지옥’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는 것.
“이라크군은 철수하며 쿠웨이트의 모든 비행기와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호텔에 대포를 쏘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뒤 인류 공동의 자원을 파괴하고 이웃 국가를 침략한 독재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전 장군이 이끌던 공군수송단은 연합군의 각종 장비와 병력, 인력들을 C130 수송기로 쿠웨이트까지 실어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경까지 밤을 새워 임무를 완수해내자 연합군 관계자들은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97년 준장으로 예편한 뒤 정보통신회사에 근무하다 현재 어학원 개설을 앞두고 있는 그는 걸프전의 경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것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며 파병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육군 간호병과장인 신숙호 대령은 91년 1월 30일부터 4월 7일까지 국군의료지원단 소속(당시 중령)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루아리아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벌였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국경에서 부상한 군인과 민간인을 치료하는 것이 임무. 그러나 하루 10여차례씩 이라크의 화학탄 공습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방독면을 쓰고 치료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최전방에 처음 도착한 날 대규모 전상자가 발생, 70여명의 피투성이 부상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신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아비규환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환자를 보면 이념과 명분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우선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당시 그가 돌본 환자 중에는 이라크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의료지원단의 임무이기 때문에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는 파병이 결정되면 의료활동은 하루빨리 펼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파병과 관련해 같은 말을 했다. “나라가 부르면 군인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군인에겐 그것이 영광이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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