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24일 영국 의회에서 말했듯이 이번 전쟁의 승패를 가름할 일대 ‘격전’이 곧 바그다드 남쪽 30∼60㎞ 일대에서 벌어진다.
전장(戰場)은 바빌론 서쪽의 유프라테스강 유역. 구릉과 계곡이 어우러진 고원지대로 곳곳에 마을이 산재해 있다.
24일 이곳에 도착한 미군에 맞설 이라크부대는 최정예인 공화국수비대 소속 마디나사단. 연합군은 이라크 정예부대와의 첫 대규모 지상전인 이번 전투가 심리적, 전술적 차원에서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디나사단을 조기에 괴멸시킨다면 공중을 떠돌던 ‘충격과 공포’가 땅 위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도 촉발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연합군측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1주일 이상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전쟁 기조는 미국의 장담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미 선발대는 오도가도 못한 채 2∼3주 정도 제4보병사단의 지원을 기다려야 한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미국 지도부로서는 하루가 천년처럼 긴 시간이 될 수 있다.
▽양측 전력=미군은 제3보병사단을 주축으로 전선 후방의 지원군까지 합쳐 3만∼4만명으로 구성된다. 마디나사단은 1만명 규모에 불과하나 T-72 탱크와 장갑차, 대공포,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 외형적인 지상전 화력에서는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공권은 미군이 확실히 쥐고 있다.
▽전투 양상 전망=미군은 본격 전투 돌입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현재 마디나사단의 화력은 나무 밑, 민가, 학교, 종교 시설 주변 등에 흩어져 있다. 미군이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지상군을 진격시킨다면 미군 피해는 적겠지만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융단폭격 없이 아파치헬기의 저공비행으로 정밀타격을 가한다면 미군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24일 탐색전 당시 미군 아파치헬기 35대가 마디나사단의 탱크를 타격하려 했지만 거센 대공포 반격에 물러나야 했다. 미군 조종사들은 “탱크가 농가에 바짝 붙어 있거나 나무 밑에 숨어 있어 제대로 겨냥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이 일단 마디나사단의 저항력이 충분히 약해졌다고 판단될 때까지 폭격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 제101공중강습사단이 전선 후방에 도착해 보급로를 확보하면 전면 공격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디나사단은 미군이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엄폐 시설에 웅크리고 있다가 일제히 로켓과 탱크로 반격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바로 이번 전투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생물무기는 안 나오겠지만 신경가스(VX)가 사용될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했다.
또 하나의 대응 시나리오는 거의 응전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다 바그다드 경계선에 그어진 2차 방어선에 헤쳐 모이는 상황. 연합군은 수만명의 정예군이 시가전 요원으로 변모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마디나사단은?=마디나사단의 전력이 과대 평가됐다는 분석도 많다. 1991년 걸프전 때 마디나사단은 다국적군 지상군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으로 측면공격을 받자 황급히 도주한 바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 사막에서 퇴각 중 벌인 전투와 고향 땅 계곡 지대에서 생사를 걸고 임하는 전투는 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군이 속도와 화력에 의존하는 군대인 반면 마디나사단은 정교하게 정립된 전략에 의해 움직이는, 즉 ‘자기집’에서 강한 부대다.
또 간부 상당수가 이란-이라크전쟁과 걸프전 참전 경험을 가진 백전 노장들이다. 대부분 지원병인 병사들도 후생복지 등 여러 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아 왔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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