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요르단 르포&쿠웨이트 르포

▼요르단 르포…"아랍권 단결하라"▼

금요일인 28일은 이슬람의 휴일. 이날 아랍 전역에서는 금요예배를 마친 수십만명의 이슬람교도들이 ‘미국에 죽음을(Death to America)’ 등을 외치며 격렬한 반전 반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아랍권 시위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구호가 등장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시내 중심가의 알 후세이니 사원에서 쏟아져 나온 수천명의 이슬람교도들은 이렇게 외쳤다. “사담은 살라딘이다!”

▽배교자(背敎者)에서 순교자(殉敎者)로=살라딘은 1187년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을 물리친 이슬람의 전설적인 영웅.

그동안 이슬람 세계에서 살라딘에 비유된 인물은 오사마 빈 라덴 정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거꾸로 이단자 취급을 받아왔다. 그가 이끄는 이라크 집권 바트당이 ‘정교 분리’를 내세우는 등 세속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 이슬람 원리주의에 충실했던 빈 라덴은 후세인을 ‘배교자’로 몰아붙였다.

그런 후세인 대통령이 갑자기 영웅으로 격상된 계기는 최근의 연설. 그는 이라크인들에게 결사항전을 요구하며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등 순교를 강조하는 수사법을 여러 번 썼다. 연설 뒤 요르단의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사담이 알라에게 돌아왔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후세인 대통령이 종교의 힘을 빌리려 했다는 일부 분석도 있지만 이슬람 민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띠면서 이슬람 세계의 구심점이 필요하던 터였다.

▽“화학무기 사용하라”=금요예배 이후 암만 등 아랍권에서 터져나온 또 하나의 새로운 구호다.

이번 전쟁에 ‘종교전쟁’의 색채까지 가미되면서 아랍권의 감정이 더 격앙됐다는 얘기다. 예배를 주도한 이슬람 성직자들은 이번 전쟁을 ‘지하드(성전·聖戰)’에 비유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시리아와 이란이 이라크를 돕고 있다”고 비난한 것도 거꾸로 아랍권 단결을 부추기고 있다. 암만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요르단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무사 켈라니는 30일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이 이 지역 정치 군사 역학구도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썼다.

아랍권이 더 격렬해진 또 하나의 요인은 28일의 바그다드 시장 폭격. 알 자지라 방송, 아부다비 TV 등 아랍권 방송을 통해 전달된 바그다드의 참상은 아랍인의 피를 끓게 했다. 비교적 신중한 자세를 보였던 요르단의 언론인들까지 30일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금요예배 이후 아랍권의 변화가 ‘아랍 민족주의’로 불붙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암만=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쿠웨이트 르포…"안전지대는 없다"▼

쿠웨이트가 이라크 미사일의 직접 사거리권에 들면서 피해를 보기 시작해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29일 오전 1시42분경 쿠웨이트 북쪽 소우크 샤르크 쇼핑센터 건물 앞바다의 산책용 다리 위에 이라크 미사일이 떨어졌다. 50여m 떨어진 5층 규모의 대형 쇼핑센터 일부가 파손되고 2명이 다쳤다. 20일 이래 15개의 미사일이 쿠웨이트를 향해 발사됐으나 모두 요격되거나 외곽 사막지역에 떨어졌고 이번처럼 쿠웨이트 중심부가 미사일의 영향권에 든 것은 처음이다.

다리 중간이 부서졌고 폭발 충격과 파편으로 쇼핑센터의 벽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 내 180석 규모의 극장 세 곳이 크게 파손됐다. 유리로 된 대형 출입문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창 수백장이 깨졌다. 건물 경비원 2명은 다리와 어깨 등을 다쳤다.

미군 관계자는 “미사일이 지상 20∼25m 높이로 매우 낮게 날아왔기 때문에 레이더에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쿠웨이트 외무부의 세이크 알 사바 장관은 “미사일의 궤도와 파편 등으로 미뤄 중국제 지대지 실크웜 미사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생화학무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쇼핑센터는 여러 개의 쇼핑몰과 대형 슈퍼마켓인 술탄센터, 각종 고급 상점, 식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 또 반경 3㎞ 이내에 국빈용 시에프궁과 다스만 왕궁, 의사당 건물 등 정부 청사들이 밀집해 있다.

미사일이 날아온 시간은 새벽이라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시민의 불안감은 크게 고조됐다.

폭발 당시 현장에서 200여m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쿠웨이트인 바툴 타브타바이(40·여)는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가슴이 뛴다”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살아 있는 한 쿠웨이트에 안전한 상황이란 없다”고 말했다.

테러에 대한 공포감도 확산되고 있다.

28일 밤 셰러턴 등 특급호텔 3곳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전화가 걸려와 군 폭발물 처리팀이 투입되는 소동이 있었으나 폭발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영자 신문 아랍타임스는 이라크 남부에서 게릴라전을 펴고 있는 이라크 비정규군 ‘사담 페다인’이 테러를 하기 위해 쿠웨이트 침투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 중 11명이 28, 29일 이틀간 밤을 틈타 국경을 넘다가 체포됐다고 전했다.

30일 낮에는 쿠웨이트 북부 우다이리의 미군 기지 앞에 모여 있던 미군 병사들을 향해 한 민간인 복장의 남자가 트럭을 몰고 돌진, 병사 10∼15명이 다쳤다. 정확한 사건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쿠웨이트 주둔 미군을 겨냥한 테러의 시작을 알리는 공격으로 추정되고 있다.

쿠웨이트= 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