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지난 몇 년간 성장을 이끌어 왔던 소비가 한계에 이르면서 올해 성장은 수출과 설비투자가 맡을 것이라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소비뿐만 아니라 투자마저 위축되면서 한은의 낙관론이 빗나가고 있다. 금융기관에 쌓인 단기예금(만기 6개월 이하)이 380조원에 이르지만 대내외 불안요인 때문에 기업의 설비투자로 흘러들지 않고 있는 것. 반면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내수 위주 부양정책 후유증으로 가계대출과 카드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민간 신용위기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전 장기화 조짐, 북한 핵문제, SK글로벌 사건 등 악재가 겹치면서 소비와 투자심리가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다.
그나마 수출이 올 들어 27일까지 휴대전화 자동차 기계류의 호조로 130억달러의 실적을 올려 작년 동기대비 20% 증가하면서 가까스로 경제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의 장기화로 미국 등 세계경기가 침체할 경우 수출마저 어려워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계속되는 세계경제 불안〓한국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원유와 석유 관련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연간 12억달러의 수입 증가 효과가 빚어진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유가가 한은의 당초 전망치인 배럴당 25달러에서 30달러로 오를 경우 연간 수입 증가액은 60억달러에 이르고, 이는 경상수지적자로 나타난다.
국내 원유수입 금액은 1월과 2월에 작년 같은 기간과 대비해 각각 43.3%, 36.3% 늘어났고 도입단가는 각각 47.6%, 53.6% 상승했다. 반면 도입물량은 1월과 2월에 각각 2.7%, 11.3% 감소했다. 이는 곧 국내 원자재값 상승을 초래하면서 기업의 경영 위축과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 금값도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 뉴욕증시와 미국 달러화가 일제히 하락세를 나타내자 투자자들이 다시 대체 투자수단인 금 매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금 관련주들도 증시 전반의 약세와는 반대로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내 대표적인 업종 지수인 필라델피아 골드 앤드 실버 지수는 전날보다 7.3%나 오른 66.74를 나타냈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영향이 한국시장에까지 미칠 경우 기업들의 자금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외국투자가들의 불안한 시각〓메릴린치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된 데다 고유가 상황이 예상보다 더 우려된다’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4%에서 3.5%로 0.9%포인트 하향조정했다.
HSBC증권도 최근 북한 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을 반영,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3.4%로 낮추고 원-달러 환율 전망치도 달러당 1290원으로 수정했다. HSBC는 재정정책 등으로 정부 부문에서 경기부양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민간부문과 기계·설비 투자감소에 따른 경기하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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