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라이프]황사로 눈-코-입 먼지 가득…“잔인한 4월”

  • 입력 2003년 4월 2일 17시 00분


본격적인 황사 시즌이 다가오면서 박순웅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6일 교내에 있는 관측소에서 학생들과 함께 황사의 농도를 재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중국내 황사 발원지를 돌아보고 온 박 교수는 올해는 작년보다 황사현상이 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주일 기자 fuzine@donga.com
본격적인 황사 시즌이 다가오면서 박순웅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6일 교내에 있는 관측소에서 학생들과 함께 황사의 농도를 재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중국내 황사 발원지를 돌아보고 온 박 교수는 올해는 작년보다 황사현상이 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주일 기자 fuzine@donga.com
2003년에는 황사가 언제쯤 불어올까, 최근 몇 년 사이 황사는 왜 이렇게 심해졌을까,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나….황사 피해가 컸던 만큼 궁금한 것도 많다. 20여년 넘게 황사를 연구해온 박순웅(朴淳雄·62)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만나러 관악산으로 향했다.

▽황사 언제 오나〓박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황사 관측소는 캠퍼스 동쪽에 비탈진 산길 위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박 교수는 거센 나뭇가지와 돌부리로 가득찬 급경사길을 날렵하게 오갔지만 기자는 거의 목숨을 걸고 관측소로 올라갔다.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측정하려면 관측소는 될 수 있으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 네이멍구 눈 녹으면 부스러기 많아져

관측소에는 캐스케이드 임팩터, 디뉴더, 소닉 풍속계 등 이름도 생김새도 복잡한 장비들이 즐비했다. 장비들은 주로 먼지의 농도와 바람의 세기를 재는 데 쓰인다. 이런 관측소가 캠퍼스 내에 두 곳 더 있다고 한다.

“왜 올해는 황사가 늦나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봤다. 지난해에는 3월 초부터 황사가 기승을 부렸다.

“눈 때문이지요.” 황사가 많이 발생하는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에 올해 눈이 많이 와서 아직 모래바람이 크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중국 황사 지대를 돌아보고 온 박 교수는 하얗게 눈 덮인 네이멍구 사진을 기자 앞에 내밀었다.

그러나 일단 눈이 녹으면 황사가 예년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네이멍구는 건조한 사막지대라서 눈이 빨리 녹는다. 땅이 얼었다 녹으면 틈이 갈라지고 쉽게 부스러진다. 그만큼 흙먼지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박 교수는 이달 중순 안에 황사가 본격적으로 불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황사 현장을 가다〓지상 1㎞ 내 대기권을 연구하는 미(微)기상학 전문가인 박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로 있다가 81년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왔다. 20여년 넘게 황사 연구에 몰두해온 그는 지난해와 올해 거의 한달 동안 중국 북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황사의 발원지와 이동경로를 추적해 나갔다. 황사 먼지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목이 아픈 것은 물론 탈진도 여러 번 했다. 박 교수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 곳곳에 동굴을 파고 살아가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별다른 생존수단이 없는 이들은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개간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황사를 열심히 설명하는 박 교수 앞에는 흙이 담긴 30여개의 병이 놓여있다. 박 교수가 중국에서 ‘밀반출’해온 흙이다. 박 교수는 “황사라고 하면 대개 모래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라며 “황사 성분은 황토, 모래, 고비(자갈과 모래가 섞인 토양)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자갈과 같은 큰 알갱이는 무거워서 한국에까지 날아오지 못하지만 바닥에서 뒹굴면서 모래와 흙을 흩날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지독했던 황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 피해 일수는 2001년 27일에서 지난해 17일로 줄었다. 지난해 피해 기간은 짧았지만 피해 강도가 세진 것은 그만큼 황사 발생지역이 가까워졌기 때문.

원래 황사는 중국 북서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많이 생겨났으나 최근에는 베이징 북서쪽의 네이멍구 지역이 주요 발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멍구 지역의 사막화는 수십년 동안 진행돼왔다. 중국 정부는 50∼60년대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 공급과 유휴노동력 활용을 위해 네이멍구 지역에서 대규모 개간, 벌목, 지하수 개발 사업을 펼쳤다. 무차별적 개간이 이뤄지면서 예전의 초지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최근 2∼3년간 강수량이 적었던 것도 황사량 증가에 한몫했다.

▽황사 피해 해결책〓박 교수는 올해 중국을 돌면서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지난 1년 사이 민둥산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중국 정부는 경작지와 목축지를 줄이고 ‘일년에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고위 간부가 방문했던 지역에는 ‘사막화를 방지해 푸른 장벽 만들자’는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사막 초지화엔 최소 20∼30년 걸려

그러나 나무심기 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가난한 주민들에게 경작지를 축소하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가 주민들에게 개인 돈으로 나무를 사서 심으라고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황사는 해결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문제”라며 “사막지대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방법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네이멍구 지역은 연강수량이 400㎜ 정도 되기 때문에 새로운 개간만 없다면 풀씨가 자라날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게 사막이 초원이 되기까지 얼마 걸리겠느냐”고 묻자 박 교수는 관악산 저 멀리를 쳐다보며 답했다. “최소한 20∼30년 정도요.”

‘황사와의 전쟁’은 길고 험난한 길이 될 듯싶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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