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관공서…상점…바그다드 '약탈의 도시'

  • 입력 2003년 4월 9일 23시 53분


‘굿(good)! 부시, 노(no)! 사담.’

개전 3주만인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을 환영하는 이라크 군중의 환호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미군이 티그리스강 서안 대통령궁을 점령한 데 이어 동안쪽 시가지로 진격한 뒤의 모습이다.

바그다드의 외신들은 이날 “이라크 지휘부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생겨난 치안 공백은 찬란한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고도인 바그다드를 ‘약탈의 도시’로 급격히 바꿔놓고 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 전문가집단이 가장 우려했던 무정부 상태가 남부 바스라에 이어 바그다드에까지 밀려온 것이다. 빈센트 브룩스 미 중부군사령부 대변인은 “미군이 이라크 병력과 시가전을 벌이는 한편 일부는 치안유지 쪽으로 임무를 전환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시민 500만명이 거주했던 바그다드를 미군 3만∼4만명이 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AFP AP 등 외신들은 후세인 정권에서 핍박을 받았던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의 밀집지역인 바그다드 북쪽 하바비야 지구에서 조지 W 부시대통령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BBC방송의 앤드루 길리건 기자는 “바그다드 동부와 북동부에서 미군이 진격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했다”면서 “시민들을 막는 후세인 추종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타전했다.

그러나 카메라에 잡힌 연호하는 군중 뒤엔 어김없이 훔친 가전도구나 생필품을 들쳐메고 뛰어가는 청년들이 보였다. 바그다드 중심부의 정부청사와 경찰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위원장을 맡았던 올림픽위원회 본부 등에는 약탈자들이 놓은 불로 화염이 치솟았다.

한 미 해병은 눈앞에서 이라크 청년 2명이 약탈한 컴퓨터 장비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보고선 “K마트(미국의 유명 할인판매업체)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약탈이 자행되는 중간에 군중 일부는 곳곳에 걸린 후세인 대통령의 초상화에 발길질을 해댔고 특히 후세인 생일을 기념해 파르두스 광장에 세운 대형 동상은 종군기자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괴됐다.

바그다드 북동부 사담시티는 후세인의 권력 기반인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았던 빈민 거주지역. AFP는 현지 주민들을 인용, “주민들이 미군이 오기 전 사담 페다인 민병대 수비대원들을 몰아냈다”고 전했다. 미국이 이번 전쟁에 붙인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는 적어도 일부 지역에선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한편 BBC 방송은 이날 영국군이 무법천지로 변해 약탈이 만연됐던 남부 바스라의 질서 회복을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영국군이 7일 전격 진격한 이후 바스라는 많은 시민들이 대학과 은행, 공공건물 등을 약탈하는 등 무법천지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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