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전쟁들에 비해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21일간 미영 연합군과 이라크측의 표정은 몇 번씩이나 뒤바뀌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전쟁 진행 상황은 크게 4단계로 정리된다.
▽1단계 ‘이거 너무 쉬운데…’=개전 이후 38시간 동안 제한 폭격을 가한 연합군은 곧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개념대로 맹폭을 가했다. 거의 동시에 지상군이 투입돼 쾌속으로 북진했다. 개전 사흘째인 22일 남부 바스라에서 이라크군 정규 2개 사단의 집단 투항 소식이 들려왔다. 이라크군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듯했다.
▽2단계 ‘이게 아닌데…’=투항했다던 이라크군 사단장이 23일 알 자지라 TV와의 회견에서 “미군은 거짓말 말라”며 항전을 다짐했다. 이어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와 여러구의 전사자 시신 모습이 방영되면서 미국 국민을 경악시켰다. 이미 점령했다던 바스라 나시리야 등에서는 이라크군과 민병대의 비정규전 전술에 휘말려 연합군 사상자가 속출했다. 25일에는 모래폭풍까지 밀어닥쳤다.
선봉대인 미 제3보병사단은 북진을 계속했지만 보급선이 길고 얇게 형성되면서 연합군의 포진은 누가 봐도 취약한 형태가 돼버렸다. 민간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반전시위가 더욱 거세졌다.
특히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24일 TV에 등장, 항전을 촉구함으로써 ‘혹시나’ 했던 연합군측을 실망시켰다. 미국 내에서는 장기전 우려와 함께 전쟁 전략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3단계 ‘공화국수비대를 부숴라’=미군은 개전 1주일을 넘기면서 ‘선(先) 중남부 전선 장악, 후(後) 바그다드 진격’으로 전략을 바꿨다. 선봉대는 바그다드 남쪽 70㎞ 지점에서 멈췄다. 4월 중순 합류를 목표로 미 본토의 제4보병사단에 대해 이동 명령이 내려지는 등 장기전에 대비한 병력 증원 조치가 잇따랐다.
그러면서 미군은 폭격의 대부분을 공화국수비대 진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닷새가량의 집중 폭격에 이어 31일 미 지상군이 공화국수비대를 정면 공격했다. 대격돌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공화국수비대는 휴지처럼 구겨지며 물러났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미군은 4월 3일 바그다드 외곽 사담국제공항 장악에 나섰다.
▽4단계 ‘툭 건드리니까 무너진 바그다드’=미군은 5일 오전 40여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바그다드 남부로 들여보낸 뒤 동쪽으로 돌아나왔다. 탐색전을 겸한 3시간짜리 작전이었다. 이라크군의 저항은 격렬했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찔러보고 별 것 아니면 밀어붙인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구상대로 7일 미군이 본격 진격, 대통령궁 3곳을 장악했다.
이어 8일 티그리스강 동남쪽을 거의 장악한 데 이어 9일 해병대를 동쪽으로 깊숙이 밀어넣었다. 이라크군의 저항은 더 이상 없었다. 시아파 거주지역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영 구호를 외쳤고 후세인 대통령의 동상이 무너졌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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