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함락/전문가 좌담]"미국식 세계패권 막올랐다"

  • 입력 2003년 4월 10일 18시 42분


《9일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으로 이라크전쟁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번 전쟁으로 중동질서와 세계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이번 포스트 후세인 이라크의 남은 과제는 무엇이며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현인택(玄仁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국제정치)와 이종택(李鍾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중동정치), 오문석(吳文碩) LG경제연구원 상무(거시경제) 등 전문가들의 긴급좌담을 통해 전망해 봤다. 좌담은 10일 오후 동아일보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현인택 교수=이라크전쟁은 군사적 측면에서는 거의 끝났지만 정치, 경제적으로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이번 전쟁은 탈냉전 이후 세계 질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과거 수십년간 구미 각국 간에 이와 같은 의견대립이 있었던 적은 없다. 또 중동 문제에 이처럼 미국이 강력히 개입한 적도 없다. 걸프전이 ‘리액티브(reactive·공격에 대한 대응)’한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전쟁은 ‘프로액티브(proactive·선제공격)’한 측면이 강하다.

▽오문석 상무=90년대 냉전종식 후 미국은 국방비를 줄이는 등 경제우선주의를 택했다. 그러나 9·11테러를 계기로 다시 안보우선주의로 전환했다. 이는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더라도 안보만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석유 이권을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석유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세계 패권을 주도하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본다.

▽이종택 교수=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 테러와의 연결성을 차단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어 중동에 민주화를 확산시키려 한다. 그러나 중동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에는 척박한 토양이다. 문맹률이 남자 40%, 여자는 70%에 이르고 중산층도 형성돼 있지 않다. 91년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 등 일부에서 민주화의 싹이 텄지만 중동의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권 안보를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 도미노효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정부에 대항할 시민단체가 있다면 그것은 원리주의 세력뿐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란의 호메이니 정부 같은 원리주의 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권교체보다는 점진적 민주화를 진행시켜야 한다.

▽현 교수=이번 전쟁에서 보인 전통적 유럽 강국과 미국간 견해차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일종의 3국 연합으로 미국에 대항했지만 앞으로도 3국이 계속 같은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오 상무=전쟁은 끝났지만 경제회복을 위한 불확실성의 해소도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추가 테러의 가능성, 쿠르드족과 터키 등 주변국의 갈등 가능성, 이라크 복구과정에서 서방국가간의 갈등 등이 남아 있다. 이라크 재건에는 1000억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이 재원을 이라크의 석유를 팔아서 대겠다고 하지만 그럴 경우 유가가 폭락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해체까지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중동 지역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유가를 폭락시키고 OPEC를 해체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이 교수=서방국가 전체의 이라크 채권액 900억달러 중 프랑스와 러시아 등 석유회사의 채권액은 570억달러다. 미국은 전후 이라크의 시설복구 및 각종 낙후시설의 현대화에 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만5000여명으로 예상되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유지비용과 각종 구조활동비가 추가로 들 것이다. 결국 미국은 프랑스 중국 독일 등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국가들을 이라크 경제재건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들 국가가 주장하는 경제적 이권을 완전 무효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 상무=한국으로서는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재건사업은 미국 메이저업체들이 주도하겠지만 전략적 제휴가 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중동에서의 건설 분야 경험이 풍부하다. 또 이라크전쟁은 해방전쟁이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이라크 경제복구에 적극 나설 것이고 여기서 한국의 수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중동 전체로 넓혀보면 그동안 고유가 덕분에 중동 국가들은 투자재원이 충분해졌다. 이제 이라크전쟁이 끝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각종 인프라사업에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현 교수=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패자는 유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엔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로서 효용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다시 제기됐다. 탈냉전 이후 유엔의 역할에 기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5개 상임이사국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커 유엔 창출 이후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앞으로 유엔은 제한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교수=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유엔 무용론을 주장해 왔다. 이들은 이라크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 유엔의 권위를 위축시킬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재건에 유엔을 참여시키겠다고 원칙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이 단기전이 됨에 따라 유엔을 이라크전쟁의 정통성을 찾는 데만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거의 단독으로 치른 전쟁에서 나온 전리품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현 교수=최근 한국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가운데 이라크전쟁이 발발했고 이젠 재건문제가 남아 있다. 1970년대 한국경제는 중동특수로 경제도약의 기회를 맞았던 경험이 있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런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일본은 이라크전쟁을 경제회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오 상무=작년에 한국은 소비와 건설이 성장을 주도했다. 올해는 가계부채가 늘어나면서 소비가 위축됐고 건설도 부진해졌다. 결국 수출이 살아야 경기가 회복된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전쟁 종결시 일단 수요가 회복되고 투자도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요가 어느 정도 살아난다고 해도 공급과잉이 문제다. 본격 회복은 어렵다. 물론 이라크 복구에 따른 특수가 있다고 해도 미국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도 당분간 부진이 예상된다.

▽현 교수=이라크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다음 타깃은 북한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전쟁에 대한 찬반과 파병에 대한 찬반 등으로 국론이 분열됐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일단 한미 갈등을 완화했다는 아이러니컬한 면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파병 결정을 했고 미국은 북한을 이라크와 다르게 취급한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전쟁 후 미국이 덜 공격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며 북한을 타깃으로 하는 군사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 교수=나도 미국이 승리의 여세를 몰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단기전 승리가 협상의 여유를 주었다고 본다. 반면 북한은 상당히 위축됐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군비경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오 상무=북한 핵문제는 한국 경제회복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북한 핵문제는 국가 위험도에 반영돼 외평채 가산금리가 오르내린다. 다행히 외평채 가산금리는 최근 안정된 모습을 보여 이 문제가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북한이 핵 재처리시설을 가동하거나 미사일 시험을 할 경우 어떻게 한미 공조가 유지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다. 한미 양국 모두 평화해결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만일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부간의 사전조정이 필요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다음달 우리나라를 주시할 것이다. 여기서 북한 문제에 따라 신용등급이 조정될 수 있다. 경제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현 교수=이라크전쟁으로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인 단독이슈로 부각되는 위기는 피했고 숨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다만 앞으로 북한이 계속 위기를 부추기는 조치는 없어야 한다. 과거 몇 달간 한미간에는 불협화음이 빚어졌다. 다음달 한미정상회담에서 위기 완화를 위한 공조 기반을 다지고 다자간 협력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보는 물론 경제상황도 위기를 맞는다.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다.

정리=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전문가 기고▼

최악의 경우 수개월에 걸친 소모적 장기전까지도 배제할 수 없었던 이라크전쟁은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진입과 함께 이라크의 반격다운 반격조차 없이 급속히 종전으로 치닫고 있다. 위협적 존재로 인식됐던 공화국수비대의 1, 2차 방어선이 큰 저항 없이 무너짐에 따라 수만명으로 추산된 특수공화국수비대와 민병대의 조직적 결사 항전도 무위로 끝나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이렇듯 이번 전쟁을 단기전으로 이끌었는가.

무엇보다 막강 연합군의 빈틈없는 전략을 으뜸 요인으로 들 수 있다. 개전 이전부터 미국은 위성방송, 전단 등 각종 수단을 활용해 첨단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정확도를 집중적으로 전파함으로써 이라크 지도부와 군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전략적 공습과 지상군 진출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공권력을 마비시키는 등 더욱 효과를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5일에 기습적으로 거행된 일부 기갑부대의 바그다드 ‘위력수색’과 ‘무력시위’에 이어 7일 대규모 기갑부대가 시내로 진출해 대통령궁 등 전략적 거점을 점령하면서 이라크군과 민심은 충격과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개전 며칠 후 연합군 주력 부대의 진격이 일시적으로 주춤할 때 전쟁 장기화 우려가 제기됐고, 병참선이 길어진 데 따른 측후방 위협과 게릴라전 및 자살폭탄 공격 등으로 전선이 일시 교착되는 듯 했으나 작전계획의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보급로가 차단되거나 남진한 공화국수비대가 미 지상군을 제대로 포위해 압박하지도 못했다. 우려되던 대량살상무기 공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연합군의 장거리 정밀 타격수단,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장착한 재래식 폭탄, 무기체계간의 벽을 허문 네트워크 중심 작전체계, 그리고 완전한 제공권 장악 등의 전술적 우위가 그 위력을 배가시켰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전쟁지도체계의 효율성도 부각되고 있다. 한때 병참선이 위협받고 포로들의 모습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광범위한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전쟁 지도부는 대체로 높은 수준의 팀워크를 유지했다.

이에 반해 이라크측은 전쟁방지에 총력을 기울였을 뿐 전시에 대비한 치밀한 전략은 사실상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첨단무기와 재래식 병기, 특수작전이 어우러진 이번 전쟁은 앞으로 전쟁 양상의 일단을 보여주는 서막이다. 군사력만으로 평가할 때 미국의 능력은 두세 곳 이상의 전장에서 이라크전 규모의 전투를 거의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사실상 공인됐다고 볼 수 있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군사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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