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은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한 단기전 시나리오보다도 짧은 3주 만에 사실상 일단락됐다. 전후복구 특수(特需)에 대한 기대가 퍼졌고 세계 경제는 활기를 띠는 듯했다.
미군이 바그다드의 대통령궁을 점령한 8일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전쟁 개시 후 하락세를 보여온 국제유가는 또 한번 떨어져 낙관적인 전망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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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갈라선 유럽의 앞날 |
그러나 조기 종전의 약효는 오래 가지 못했다. 9일 바그다드 함락 소식이 전해졌지만 미국과 유럽의 주식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때 반짝 상승했던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급락을 거듭해 14일엔 거품 붕괴 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전황에 쏠려 있던 투자자들의 관심이 냉엄한 현실 경제로 옮겨가면서 선진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취약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91년 걸프전은 세계 경제가 탄탄할 때 발생했지만 지금은 선진국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든 시기라는 점도 ‘조기 종전 효과’를 상쇄한 요인으로 꼽힌다.
전후 세계 경제의 회복 여부가 미국 경제에 달려 있다는 점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경제가 이라크전쟁의 후유증을 딛고 무난히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전망이 밝지 않다. 미국의 소비자심리는 3월에 9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피고용자 수는 2개월 연속 10만명 이상 감소했다. 재정과 경상수지 부문의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이번 전쟁에 800억달러의 전비를 지출한 데 이어 전후 복구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을 떠맡아야 한다.
유럽과 일본도 장기 불황으로 고전하는 실정이어서 미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의 회복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라크 부흥비용의 갹출도 주요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전이 각국의 재정적자를 늘리고 장기금리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쟁의 조기 종결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을 뿐 그 자체가 기업의 매출 순익 등 실적에 도움이 되거나 세계 경제의 회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게 각종 경제지표와 세계 증시의 흐름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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