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난민의 실상]유엔 배급식량 4월말이면 바닥

  • 입력 2003년 4월 18일 19시 27분


현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기구들이 추정하고 있는 이라크전쟁의 피란민은 모두 29만명 정도. 200만명을 헤아렸던 91년 걸프전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진 약탈과 국지전, 종파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으로 혼란과 무질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란민의 귀향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UNHCR는 16일 시리아로 피란온 난민들만 수천명이지만 이들을 돌려보내기에는 이라크 내의 상황이 좋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난민이 처한 여건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란 접경 바드라에 피란민(3000명)이 몰려들었지만 텐트가 없어 대부분 노숙을 하거나 혈연관계에 있는 바드라 주민의 집을 찾아 기숙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 정부에서 이들에게 음식을 지원하고 있지만 5월 말이면 바닥날 상황이다. 전기는 끊어진 상태이며 물 공급도 아주 제한적이다.

▼관련기사▼

- '난민돕기 시민네트워크' 출범식

이 같은 대규모 난민촌이 이라크 내 아르빌(19만명) 다후크(4만9000명) 술라이마니야(3만명) 등에 있다.

난민촌이 아니더라도 이라크 곳곳의 생활환경 자체가 크게 악화됐다. 이라크는 석유 매장량 2위 국가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6일 이라크 농민들이 당장 농기계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정제된 연료가 부족해 발을 구르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쟁 발발 전 위성사진 분석 결과, 이라크의 봄 작물 작황이 지난해 수준으로 예상됐으나 전란으로 제대로 손을 보지 못한 곳들이 많아 이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바그다드 모술 키르쿠크 등 곳곳의 식량 창고가 약탈당한 것도 큰 문제.

이라크 인구의 70%가 정부와 유엔의 배급처(약 5만5000곳)를 통해 식량을 배급받아 왔지만 현재 4월 말까지의 식량만 남아 있다고 세계식량계획(WFP)이 밝혔다.

이라크는 아랍국가로서는 물이 풍부한 곳이지만 식수 부족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물을 정제하는 염소가 모자라기 때문. 남부 주바이르 지역 당국은 염소가 보름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15일 밝혔다. 남부 바스라의 염소공장이 불에 타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곳곳에 있는 정수장의 펌프시설 역시 약탈당해 제 기능을 잃은 상태다. 식수 부족은 위생상태 악화와 약품 부족을 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제부터는 ‘전쟁을 피해 떠난 난민’보다 ‘무정부 상태를 피해 떠난 유랑민’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