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신호(5·6월호)에서 ‘외교정책에서 윤리의 부상’이라는 제하의 논문을 실었다. 필자는 포린 어페어즈를 발행하는 미 외교협회의 회장 레슬리 겔브와 사무총장 저스틴 로젠설.
두 사람은 논문에서 “과거 학자와 목사들이 주장하던 윤리적 가치가 지금은 외교 정책을 움직이는 추동력이 되고 있다”며 “독립 국가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썼다. 다음은 그 요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보스니아 전범 재판소에서 증언한데 이어 미국은 민주주의의 증진을 이라크전쟁의 주요한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이슬람교도에 대한 중국의 인권 탄압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미 고위 관리가 중국을 방문하는 세상이다.
일상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이 같은 일들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변화다. 외교 무대에서 국가의 이익은 지고의 가치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냉전 당시 아무리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정권도 어느 한 진영에만 속해 있으면 보호받았다.
지미 카터 행정부는 이 같은 모순을 시정하려고 했으나 극우 독재정권을 두들기는 데,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반대로 좌파 정권을 두들기는 데 외교의 우선순위를 뒀다.
국가안보를 위협받을 요인이 줄어든 지금 미 행정부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우선순위로 내세울 여유를 갖게 됐다.
미국뿐 아니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범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량학살이든 인종청소든 간에 인권유린 사태를 묵과하지 않고 유엔은 보스니아와 소말리아에 개입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코소보에서 군사행동을 벌였다. 미국이 아이티의 독재정권을 제거했을 때 미주기구는 환영했다.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이 무력개입의 구실로 악용될 우려는 있다. 그리고 서로 주장하는 가치도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제형사재판소와 인종학살 금지 협약,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가 보편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동의한 반면 미국은 거부했다.
강국과 약소국이 생각하는 윤리도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윤리가 국가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윤리가 두 번째의 순위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이제 각국의 지도자들은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것들을 탄압하거나 묵살하지 않도록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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