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경제病’ 독일 닮아가나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18분


‘독일경제가 망하고 있다.’

이 같은 충격적인 제목을 붙인 독일 현지 연구보고서를 읽었다. 강원대 경제무역학부의 민경국 교수가 최근 어느 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다. 이 보고서는 독일경제가 요즘 고(高)실업-저(低)성장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로 ‘사회적 시장경제’ 흐름을 꼽았다. 이 흐름의 핵심은 대기업을 적대시(敵對視)하고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것이란다.

오늘날 독일 정책은 기업가 정신으로 모험과 혁신을 꾀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그러니 기업인들은 의욕을 잃어 가고 사회 전체는 과거에 쌓아 놓은 부(富)를 나누어 갖기에 급급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독일에서도 ‘이해찬 세대’가 1968년 이후 양산돼 인적자원의 질(質)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참교육’이란 명분 때문에 교실에서는 선의의 경쟁이 별로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도 독일경제에 대해 최근 “라인강의 기적은 사라지고 유럽경제의 환자가 돼 버렸다”고 보도했다.

독일 사례를 보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을 보자. 3월 중 경상수지 적자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11억9000만달러로 나타났다. 3월 중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생산은 증가세 둔화, 소비는 계속 부진’으로 요약된다.

공단과 백화점, 재래시장 등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통계수치보다 더 나쁘다. 일자리 얻기도 매우 힘들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째 취업하지 못해 빈둥거리는 청년들이 수두룩하다.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육박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철도 및 발전 민영화 계획이 노조의 반대로 물 건너 가는 등 공공개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다분히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냄새가 풍긴다.

경제성장의 엔진인 기업은 어떤가. 기업을 옥죄는 거미줄 규제 때문에 투자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독일의 흐름과 상당히 비슷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자칫 잘못하면 3% 미만으로 떨어질 우려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도 위기감을 느끼는 듯하다. 걸핏하면 “언론이 위기를 부추긴다”고 언론 탓으로 돌리다가 경제지표가 좋지 않게 나오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 집행을 가급적 상반기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방식의 경기부양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캠퍼 주사처럼 반짝 효과만 낳을 뿐이다. 2001년 초 불경기를 타개한다고 동원된 내수 확대정책의 후유증을 모르는가. 당시에 부동산경기를 부추기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바람에 그 부작용이 지금까지 암적 존재로 남아 있다.

단기 부양책 대신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히 없애야 한다. 또 정부가 섣불리 기업을 지원한다거나 한 수 가르치겠다고 나서서도 안 된다. 기업들을 분식회계, 정경유착의 온상으로만 봐서도 곤란하다.

한국 경제는 기로(岐路)에 서 있다. 몇 년 뒤 외국 언론에 “한강의 기적은 사라지고 한국은 동북아에서 환자가 되었다”는 기사가 실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고승철 경제부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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