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노인들에 명아주지팡이 2000여개 선물 박정호씨

  • 입력 2003년 5월 6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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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씨가 명아주를 심어 둔 텃밭 앞에서 자신이 만든 청려장을 보여주고 있다. -칠곡=이권효기자
박정호씨가 명아주를 심어 둔 텃밭 앞에서 자신이 만든 청려장을 보여주고 있다. -칠곡=이권효기자
경북 칠곡군 동명면 대구시립가족묘지를 관리하는 박정호(朴丁浩·49)씨는 2000년부터 3년 넘게 틈만 나면 명아주지팡이(청려장·靑藜杖)를 다듬고 있다. 그동안 2000여개를 만들어 칠곡과 대구 경남 등지의 노인들에게 선물했다.

“오래 전부터 가족묘지를 찾아오는 노인들이 자식과 손자만 묘지에 올려 보내고 입구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다리가 아파 성묘를 못하겠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던 박씨는 28년 전 결혼 당시 처가인 군위군 고로면에 갔다가 명아주지팡이를 사용했던 장인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처가 부근과 묘지 관리사무소 옆에 밭 1500평을 구입해 명아주 씨앗을 뿌렸다. 겨울에 씨앗을 뿌리면 다음해 가을 지팡이를 만들 수 있는 1m가량의 명아주가 자랐다. 현재도 묘지 옆 텃밭 800평에서 지팡이 500여개를 만들 수 있는 명아주가 한창 싹을 틔우고 있다.

명아주지팡이 한 개를 만드는 동안 박씨는 명아주를 수십번 만지며 다듬는다. 주문제작한 긴 솥에 명아주를 3시간 동안 삶아 단단하게 만든 뒤 껍질을 하나하나 벗긴다. 손잡이는 지팡이를 쥐었을 때 지압효과가 나도록 둥글게 일일이 깎아낸다. 사포로 매끈하게 다듬은 뒤 불에 그슬어 무늬를 넣고 니스칠을 하면 멋진 지팡이로 바뀐다.

청려장은 중국 명나라 때의 약학서인 ‘본초강목’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장수’를 상징해 통일신라시대부터 애용됐다고 한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사용했던 청려장이 지금도 남아있고, 2000년 안동을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청려장을 선물로 받았다.

“장날 읍에 나가보면 제가 만든 지팡이를 이용하는 노인들이 무척 고마워합니다. 참으로 보람을 느낍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힘닿는 데까지 노인들을 위해 명아주지팡이를 계속 만들어 드릴 생각입니다.”

며칠 전 농협경북본부가 가정을 달을 맞아 제정한 효행상을 받은 박씨는 6일 상금 100만원을 지역 노인을 위한 잔치에 써달라며 칠곡군에 내놨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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