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화계 뉴스]美영화들 테러등 사회상황 개봉시기 좌우

지구 내핵으로 진입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코어’. 이 영화의 예고편에는 가상 실험의 실패장면이 들어있는데 2월 콜럼비아호 공중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예고편은 극장가에서 모습을 감췄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9일로 예정됐던 영화 ‘버팔로 솔져스’(Buffalo Soldiers)의 미국 개봉이 7월로 늦춰졌다. 개봉 시기를 늦춘 것만 벌써 세 번째. 1989년 서독에 위치한 미군 캠프의 군인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죽이는 무기력한 군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사 ‘미라맥스’는 이 영화의 개봉시기를 놓고 2001년부터 고심해왔지만 9·11 테러와 이라크전의 여파로 적당한 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칫 “미군의 사기를 꺾는 반(反)애국적 영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정세의 중심에 있는 미국에서는 영화를 개봉할 때 당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라맥스’의 릭 샌즈 부사장은 “관객들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하지만, 개봉 당시 상황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가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땅을 뚫고 내핵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코어’는 예고편에서 가상 실험이 실패하는 장면이 나왔다. 때마침 우주선 콜럼비아호가 공중폭발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예고편은 즉각 극장에서 철수됐다.

4월초 미국에서 개봉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폰 부스’는 지난해 11월에 개봉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중전화에 갇힌 사람을 저격범이 노린다는 설정이 당시 워싱턴 D.C.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 저격살인사건과 비슷해 개봉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영화는 제작 및 마케팅 기간이 길어 예상 개봉시기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6월에 미국 개봉예정인 ‘28 데이즈 레이터’(28 Days Later)도 그렇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런던에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공포영화인데 물론 영화제작은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발생 전에 이뤄졌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현실의 고민을 연상시키는 영화를 기피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안도감을 느끼기보다 자신의 걱정을 영화에 투영시키기 때문에 아무리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도 재난영화를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다는 뜻이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