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중동경제 이렇게 대응하자]중동 5개국 한국대사 좌담

  • 입력 2003년 5월 28일 17시 39분


중동지역에서 한국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5명의 대사가 이라크전쟁 후 중동지역 현상과 한국의 대응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철 주이란 대사, 정문수 주카타르 대사, 강광원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내정자, 임홍재 주이라크 대사 내정자, 박인국 주쿠웨이트 대사 내정자. 김동주기자
중동지역에서 한국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5명의 대사가 이라크전쟁 후 중동지역 현상과 한국의 대응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철 주이란 대사, 정문수 주카타르 대사, 강광원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내정자, 임홍재 주이라크 대사 내정자, 박인국 주쿠웨이트 대사 내정자. 김동주기자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서 중동지역 유전개발과 재건 특수(特需)를 노린 세계 각국의 경쟁이 뜨겁다. 경제 제재가 풀리면 이라크는 빠르게 서방 경제권으로 편입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 ‘이라크 변수’가 사라지고 안보 위험이 줄어들면서 다른 중동국 경제도 활력을 띨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본보 경제부는 이에 맞춰 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한 중동 5개국의 한국대사(내정자 포함)를 초청해 종전(終戰) 이후 ‘중동의 변화’, 특히 경제분야 양상과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열었다. 23일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좌담에는 △강광원(姜光遠)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내정자) △이상철(李相哲) 주이란 대사 △임홍재(任洪宰) 주이라크 대사(내정자) △정문수(鄭文秀) 주카타르 대사 △박인국(朴仁國) 주쿠웨이트 대사(내정자)가 참석했다.》

▽임홍재 대사=한국기업들이 이라크로부터 받지 못한 공사대금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총 대외부채는 3834억달러이고 현대건설 등 국내업체 미수금은 약 14억달러로 파악됩니다. 한국기업의 미수금은 도로 병원 학교 등을 짓고 받지 못한 ‘땀의 대가’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선적으로 협의에 나서 받을 수 있도록 외교력을 모을 생각입니다.

▽강광원 대사=이라크의 대외부채 탕감 얘기가 나와 미수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라크가 경제제재를 받던 90년대 초에도 현대건설이 유엔을 통해 공사대금 약 3500만달러를 받은 적이 있어 미수금 회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임 대사=전후 중동 특수는 어떨까요. 이라크 전후 복구에만 최소 1000억달러에서 최고 3000억달러가 투입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박인국 대사=쿠웨이트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전쟁 불안감으로 미뤄왔던 대형 공사를 잇달아 발주하고 있습니다. 한국업체도 올 들어 이미 4억5000만달러어치를 수주했습니다. 전후 중동에 퍼지고 있는 심리적 안정이 중동의 경제적 활력을 높이고 한국 기업들의 진출 기회도 넓힐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상철 대사=이라크 복구 작업이 철저히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워싱턴과의 관계가 이라크 재건 특수 참여의 가장 큰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정문수 대사=전쟁 등으로 이라크 정부의 재정이 바닥나 공사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라크의 재원은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에서 300만 배럴로 늘릴 경우 원유 수출 대금 연간 220억달러 △유엔이 ‘원유-석유 프로그램’에 따라 갖고 있는 약 400억달러 △해외 동결 자산 17억달러 등에 불과합니다.

▽임 대사=이라크 등 중동에서 기대되는 '제 2특수'는 과거처럼 토목 건축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대사=그렇습니다. 이라크 복구 과정에서 대형 프로젝트는 미국 기업이 대부분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탄탄한 기술력으로 미국 기업의 협력업체로 진출하거나 우리 기업끼리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 대사=이라크는 물론 쿠웨이트 등에도 전쟁으로 오랜 기간 방치해 놓은 정유 정제 시설이 많습니다. 한국기업들은 이런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분야에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 대사=결국 단순 토목이나 건축 분야에서 한국업체는 비교우위가 없고 돈을 벌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석유화학이나 담수화 설비, 발전설비 등 플랜트와 자동차, 소형 발전기, 통신기기 등 정보기술(IT) 분야 등으로 넓혀 과거와는 다른 ‘중동 공략’이 필요합니다. 이라크 외에 다른 국가에서 한국 업체들이 진출할 만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 대사=이라크 전쟁 당시 미 중부군사령부가 옮겨간 카타르는 인구 62만명 가량의 소국(小國)이지만 이란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가스 매장량을 가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2010년까지 가스전 개발을 위해 발주할 공사 금액만 250억달러에 이릅니다.

▽이 대사=이란은 한국이 지난해 21억달러를 수출해 중동의 최대 수출국입니다. 작년 건설과 플랜트 등의 수주액도 28억달러로 한국 전체 해외 수주액의 30.7%나 됐습니다. 이란은 사우스파 가스전 등 걸프해역의 가스전에서 앞으로 20년간 25단계의 가스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10단계가 진행 중입니다.

▽박 대사=쿠웨이트는 이라크와의 관계 악화 때문에 중동에서 ‘중계무역’의 역할을 두바이에 넘겨주었으나 다시 찾아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노후 항만시설의 리모델링 공사 발주 등이 예상됩니다. (참석자들은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또 중동 각국이나 이슬람 문화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사=이라크 전쟁은 미국에는 승전이지만 범(汎) 아랍인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의료단 파견 등으로 한국의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전후 특수’라는 표현에도 반대합니다. 중동을 다시 보고 새롭게 접근해야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박 대사=이라크에 대해 우선 인도적 지원에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적 이득만을 챙기려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합니다.

▽정 대사=카타르는 4월에 의원의 3분의 2를 직선으로 뽑고 여성 장관을 임명하는 등 민주화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왕정 국가’라는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대사=한국인이 이란을 생각하는 것보다 이란인이 한국을 훨씬 우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는 것처럼 77년 테헤란에 ‘서울로’가 생겼고 작년 말에는 1만m² 크기의 ‘서울공원’도 생겼습니다.

▽임 대사=한국 정부는 종전 직후 1000만달러를 국제기구를 통해 이라크에 지원했고 대한적십자사 등 11개 비정부기구(NGO)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 대사=이슬람 문화는 유교와 비슷한 면도 많습니다. 대가족 제도나 부모 공경, 예의 범절 중시 등은 우리 문화와 비슷합니다. 이질적이라고만 여겨지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새로 이해하면 중동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박 대사=중동 국가들은 유럽연합(EU)을 모델로 역내 자유무역지대화 등 경제공동화에 나섰습니다. 2005년 관세단일화, 2010년 단일통화 추진, 공동전력망 구축 등을 추진해 중동 지역에 큰 변화가 있을 전망입니다.


정리=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플랜트 공사를 잡아라" ▼

새로 열릴 중동 시장의 핵심으로 플랜트 공사가 떠올랐다.

세계은행은 이라크 전후(戰後) 5년 동안 중동에서 3700억달러 규모의 정유 석유화학 발전 담수(淡水) 등 플랜트 공사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終戰)으로 불안감이 가시자 중동 산유국들은 잇따라 플랜트 공사를 발주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전쟁 직후인 4월 이미 4억50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발주했다. 이란 카타르 등도 앞 다퉈 공사를 재개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7개국은 올해 총 279억달러의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는 세계 최대의 가스전인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공사 11∼13단계(30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 쇼아이바 담수발전 플랜트(10억달러) 등 굵직한 공사가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와 건설업계는 쏟아지는 플랜트 발주를 반기고 있다. 우리 건설업계는 중동 플랜트 경험이 풍부하고 현지 인력과 장비도 충분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건설 LG건설 두산중공업 등 8개사가 중동에서 40건, 76억60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하고 있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인력은 600여명. 기존 장비와 인력을 활용하면 새로 공사를 따냈을 때 원가를 줄일 수 있다.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은 27일 쿠웨이트에서 7100만달러 규모의 변전소 공사를 따냈다.

건설교통부는 쿠웨이트를 전후 중동 진출의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산자부는 △수출금융 확대 △부품 소재 국산화 △에너지 구매와 연계된 플랜트 수주 △한국 업체간 과당경쟁 방지 등의 수주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또 건교부와 산자부는 시장조사단을 파견했고 민관(民官) 협력 체제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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