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달러당 유로화 가치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환호의 소리는 거의 없었다. 대신 ‘유럽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집권당의 지지율 최저 기록 경신과 최악의 파업대란 같은 우울한 소식만 들렸다.
두 나라는 이라크전쟁 반대에 따른 미국의 보복 위협으로 외교적 고립까지 겹쳐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인 상황. 그러나 승전국인 영국에서도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전쟁 승리로 한숨을 돌렸던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라인강 신화’의 추락=27일 독일 민영방송 RTL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권 좌파 사민당의 지지율은 25%로 1주일 전에 비해 다시 1%포인트 떨어졌다. 집권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로 추락한 것은 경제가 독일 통일 이후 최악인데다 전통적인 지지 기반인 노조가 등을 돌렸기 때문. 유럽 경제의 ‘성장 엔진’이던 독일 경제의 추락은 전 유럽에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독일의 실업자 수도 450만명(실업률 11%선)을 훌쩍 넘어섰다.
독일 경제의 하락은 사회보장비용 부담과 과도한 노동권 보호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 비즈니스 위크는 구조조정과 계약직 고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노동보호법, 기업의 사회보장비용 등을 독일 경제 하락의 주범으로 꼽았다. 여기에 90년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하는 통일비용도 독일 경제의 운신을 무겁게 하고 있다.
▽개혁의 진통=견디다 못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최근 ‘어젠다 2010’이라는 경제 개혁안을 내놓았다. 해고 요건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실업수당과 건강 연금 보험 등 각종 사회복지비용의 축소 등이 그 골자. 그러나 이 개혁안 역시 노조와 당내 반발로 휘청거리고 있다.
연금 개혁으로 시끄러운 프랑스는 27일 항공대란을 겪은 데 이어 다음달 2일 오후부터 지하철과 철도, 통신 병원 우체국 등 국가 기간망이 마비될 전망. 1995년 알랭 쥐페 총리의 우파 내각은 3주간의 총파업에 두 손을 들었지만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의 우파 정부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연금 재정 고갈을 우려하며 개혁을 요구하나 파업 주도측은 연금 개혁의 부담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이 져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블레어 내각과 노조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영국 노조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 그러나 블레어 총리가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개혁의 어젠다로 내세우면서 노조와 당내 반대세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좌파이면서도 우파적 개혁을 해온 블레어 총리의 집권 동안 보수당 집권 시절보다 빈부 격차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화 상승은 ‘양날의 칼’=달러의 대유로화 환율이 1.19달러를 넘는 등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유로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자리를 굳게 다졌다는 의미.
그러나 유로권의 수출 경쟁력에는 치명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1·4분기 유로권의 무역 흑자폭은 143억유로(약 20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의 페터 보핑거 교수는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유로화 상승세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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