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 같은 움직임은 ‘CDMA는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정부의 입장과는 어긋나는 것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일 SK텔레콤에 따르면 주한 미 8군은 3월 SK텔레콤측에 공문을 보내와 “1000∼3000대가량의 비화전화기를 등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한미군이 사용을 요청한 비화전화기는 미국 퀄컴사의 제품(QSec 800). 미국국가안보국(NSA)과 함께 도감청을 막을 수 있도록 개발했으며 미군을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에서 보안용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측은 형식승인이 나지 않은 전화기는 서비스망에 등록할 수 없는 데다 형식승인은 자사의 업무가 아니어서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부 전파감리과 이종훈 사무관은 “아직 미군의 정식 요청이 없었으나 비화전화기건 일반전화기건 요청만 하면 적법한 절차를 걸쳐 형식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에 따르면 현행 국내법상 비화전화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은 따로 없다. 그러나 형식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전화기의 부품 구성과 회로도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비화전화기의 암호화체계를 공개하면 감청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제조사들이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
2월 팬택&큐리텔이 CDMA 비화전화기를 개발, 기자회견을 열어 신제품 발표를 했을 때도 정통부는 절차를 문제 삼아 형식승인을 해 주지 않았다. 당시 팬택&큐리텔의 송문섭(宋文燮) 사장은 “도감청을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CDMA방식은 기술적으로 볼 때 도감청이 가능하며 그래서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CDMA 기술을 첫 개발한 퀄컴사가 도감청을 막는 비화전화기를 개발 판매하고 있는 것도 CDMA에서 도감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업계에서는 “실제 도감청이 자행되고 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분명하며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일부 계층에서는 비화전화기가 꽤 보급돼 있다”고 전했다.
작년 10월 18일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인 이회창(李會昌)씨는 “한 벤처기업에서 구입한 비화전화기로 마음 놓고 통화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통부는 “도감청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화전화기를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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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기자 cpu@donga.com
▼주한미군 입장▼
한편 주한미군은 올 3월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인 CDMA 비화전화기를 기존 SK통신망을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SK텔레콤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현재 미 정부 계약사인 퀄컴과 SK텔레콤이 이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주한미군의 한 관계자는 “전력증강 차원에서 미 정부 계약사인 퀄컴사로부터 비화전화기의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이 휴대전화는 한미연합사나 주한미군의 고급 지휘관들이 한국정부나 양국군과 통화시 도감청 방지 등 통신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CDMA 비화전화기는 미 정부기관에서 4800여개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럽 주둔 미군들도 쓰고 있다”면서 “이 같은 비화전화기의 도입은 기존 CDMA 휴대전화가 도감청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휴대전화의 감청을 100% 방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장비와 예산이 소요되지만 현재 도입을 검토 중인 CDMA 비화전화기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군측은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미 다른 해외주둔 미군들이 사용 중인 점을 감안하면 주한미군 배치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전망된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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