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新長江 싼샤댐 그후]<하>수몰 이주민의 애환

  • 입력 2003년 6월 24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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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시 쯔구이현 주민들이 물에 잠긴 고향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로이터 뉴시스
이창시 쯔구이현 주민들이 물에 잠긴 고향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로이터 뉴시스
“갈 데가 없다. 정부에서 옮기라고 한 곳은 가깝지만 너무 험하고 높아 살기 힘들고 마을에서 30리쯤 떨어진 다른 곳을 알아봤더니 타지 사람들에게 너무 배타적이어서 포기했다.”

후베이(湖北)성 바둥(巴東)현 선눙시(神農溪)에서 만난 아이(艾) 성씨의 투자(土家)족 아가씨(24)는 “정부에서 빨리 이사를 하라고 독촉인데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우샤(巫峽)에서 가까운 양쯔(揚子)강 지류로 험준한 협곡이었던 선눙시도 싼샤(三峽)댐에 물이 채워지면서 60km의 물길 중 20여km가 호수로 변했고 수백가구의 주민들이 높은 지대로 집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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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전에는 아버지가 조그만 거룻배로 계곡 안까지 관광객을 태워주고 한 달에 300∼400위안(약 4만5000∼6만원)을 벌어 생활해 왔는데 이제 대형 유람선이 선눙시 안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생계 수단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싼샤댐 바로 위의 이창(宜昌)시 쯔구이(자歸)현은 댐이 만들어지면서 아예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산자락에 이주민을 위한 새 도시가 만들어졌다.

신도시로 이주한 지 4년 된 장젠핑(張建平·28)은 “형은 대도시로 나가면 애들 교육이라도 시킬 수 있다며 상하이(上海)로 이주했지만 환갑이 넘은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 해 내가 모시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1일부터 싼샤댐에 물이 차 고향이 완전히 물에 잠긴 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을 잊고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리장성 건설 이후 최대의 역사(役事)라는 싼샤댐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는 아픔과 새로운 삶을 강요하고 있다.

싼샤댐의 전체 수역 1084km² 가운데 수몰된 육지 면적은 60%에 가까운 632km². 댐 수위가 135m까지 높아진 올해까지 고향을 등진 이주민은 72만명. 수위 175m로 댐이 완공되는 2009년까지는 모두 113만명이 떠나야 한다.

전 세계에서 인구 100만명 이하의 국가가 36개라고 하니 이주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994년부터 10년간 싼샤댐 건설비 900여억위안(약 13조5000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400여억위안(약 6조원)이 신도시 건설과 이주 보상비 등으로 쓰였다.

중국 정부가 1990년대 초반 처음 이주정책을 펼 때는 대부분 원거주지의 고지대로 옮기도록 했으나 산림 훼손으로 인한 토사 유입과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90년대 후반부터는 적지 않은 주민들을 외지로 내보냈다.

상하이 충칭(重慶) 광둥(廣東) 산둥(山東)성 등 전국 25개 성시(省市)로 뿔뿔이 흩어진 이주민만 해도 12만명이 넘는다.

싼샤의 수몰지역 대부분이 소수민족인 투자족이 살던 곳인 만큼 이들의 전통문화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바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투자족 왕다후이(王大煇·45)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미 이주한 72만명 중 절반가량이 투자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투자족은 대부분 쓰러져가는 목재 가옥에서 가난하게 살았다”면서 “새 주택 건설과 이주 보상비 지급으로 생활환경은 훨씬 나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쯔강변에 흩어져 살면서 전통 풍속을 지켜왔던 투자족들이 새로운 도시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싼샤=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유람선 끌며 생계 잇던 '첸푸'▼

우샤의 급류에서 배를 상류로 끄는 첸푸들.-동아일보 자료사진

양쯔(揚子)강 싼샤(三峽)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직업의 사람들이 있다. 노를 저을 수 없는 협곡의 급류에서 배를 밧줄로 끌어 상류로 옮기는 첸푸(#夫)들이다.

요즘은 팬츠를 입지만 과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모습에 발 보호용 짚신만을 신고 힘겹게 배를 끄는 이들의 모습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게 했다.

첸푸들은 대부분 싼샤 일대에서 집단으로 살아온 소수민족 투자(土家)족들이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데다 교육환경이 열악한 곳에 사는 투자족들은 한번 첸푸의 길에 들어서면 대대로 같은 길을 걷는다.

15명이 탑승할 수 있는 유람선 한 척을 보통 6명의 첸푸들이 끈다. 유람선 한 척을 끌어주고 받는 보수는 1인당 40위안(약 6000원). 하루에 한 번 정도 일을 하기 때문에 한 달 수입이 1000위안(약 1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 투자족의 한 달 평균소득이 월 300∼400위안 정도여서 이들의 수입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다.

물길이 험했던 취탕샤(瞿唐峽)나 양쯔강 지류인 다닝허(大寧河), 샤오싼샤(小三峽), 선눙시(神農溪)의 협곡에서 주로 생활해왔던 이들도 싼샤댐 건설로 선박 통행이 쉬워지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싼샤에만 수천명이나 됐던 첸푸들은 이제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일부는 협곡의 상류로 옮겨 유람선을 끌고 있다.

선눙시의 첸푸 중타오위안(鍾桃元·57)은 “선눙시 협곡 60km 가운데 20km 정도가 싼샤댐 건설로 호수로 변하면서 많은 첸푸들이 직업을 잃게 됐다”면서 “자기 배가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을 태우는 뱃사공이라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협곡 상류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고 말했다.

왕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첸푸(54)는 같은 유람선에서 배를 끄는 아들(30)을 가리키며 “조상 대대로 이 일을 해왔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첸푸 일이 힘들다며 외지로 일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협곡마저 물에 잠겨 버렸으니 앞으로 첸푸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싼샤=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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