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뉴욕타임스 기고

  • 입력 2003년 7월 27일 18시 05분


뉴욕타임스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아 '한국은 있다(The country America can not see)'는 제목으로 작가 이문열씨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다음은 요약.

태평양전쟁이 끝나던 해 미국과 소련은 남북에 각기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은 공산주의에 혁명세력을 자처하는 집단에게 장악되었고, 미군정이 시작된 남한에서는 자본주의에 바탕한 보수세력의 정권이 예정되었다.

하지만 남북의 배분이 처음 예정대로 실현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 3년간을 통해서였다. 북쪽에서 자본주의 보수 우파가 사라진 것처럼 남쪽에서도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혁신이나 진보의 논의까지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북한은 흔들림 없이 세습독재를 제몫으로 지켜내고 있지만 남한은 다시 제몫을 잃어가고 있다. 좀 과장하면 50여년 전, 우리가 흔히 '해방공간 '이라고 말하는 혼란의 시기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근년 들어 적잖은 지식인들이 거리낌 없이 좌파를 자처하며 그들의 자리를 내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파들은 전에 없이 깊은 우려와 경계의 눈길로 그들을 주시한다. 남한의 좌파 일부가 북한과의 연계를 통일염원으로 위장하는 만큼이나 우파 일부의 위기감이 슬슬 광기를 띄어 가는 것도 걱정해야할 대목이다.

진보와 보수의 논쟁도 위험한 수위에 이른 느낌이다. 진보를 독점한 좌파들은 우파를 보수로 몰뿐만 아니라 보수는 곧 악(惡)이라는 대중적 이미지 조작에 성공한 성싶다. 많은 지식인들은 우파와 보수와 악을 성공적으로 등식화(等式化)한 선동세력에 전율과 아울러 불길한 의혹을 느낀다.

하지만 더 별난 일은 많은 한국인들에게조차 난데없고 어리둥절하게 느껴지는 반미감정의 대중화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분석에 보태고 싶은 것은) 대한제국 시절부터 별로 변하지 않은 듯한 미국의 관점(한국을 보는)이다.

J . K . Fairbank가 오래전에 쓴 '동양문화사'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중국을 위해 일본과 싸웠고, 한국전쟁에서는 일본을 위해 중국과 싸웠다."

한국을 보는 미국인의 관점을 잘 드러내는 말로 보인다. 곧 자기 젊은이들이 한국 땅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데도 미국의 의식에는 한국이 없었다. 미국에게 한국은 언제나 중국의 일부거나 일본의 일부로 이해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50년전 휴전협정을 조인하는 자리에는 중국과 북한은 있어도 별도의 한국은 없었다. 남측 대표는 유엔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미군 장성이었고, 남한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뒤 5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하다. 얼마 전 북한의 핵문제를 논의한 베이징 회담에서도 한국, 특히 남한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약 올리는 방법은 바로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보거나 일본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 수립된 미국의 한반도정책이라면 한국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미국은 한국, 특히 남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는 중국 일본과 더불어 한국도 있다. 한국이 따로 있다.

이문열 NYT 기고문 전문

정리=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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