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랩행어스 캠페인’(www.straphangers.org)이라는 시민단체가 그런 사례다. 이 자원봉사단체는 무조건 소리만 높이는 대신 차분하게 조사해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다. 7월말엔 뉴욕 22개 지하철 노선 가운데 통계가 부족한 2개를 제외한 20개 노선의 성적표를 발표했고 뉴욕지역 언론은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평가를 담당하는 이 단체의 진 러시아노프 변호사는 “6가지 기준으로 성적을 매긴 결과 노선별로 차이가 많았다”면서 “모든 지하철 승객이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 기준은 △배차 간격(아침 저녁의 러시아워와 한낮 등 3개 시간대) △정시운행률 △고장률 △청결도 △좌석 확보 용이성 △안내방송 정확도 등이다. 2002년 하반기 운행 평가를 토대로 한 성적표에서 5번 지하철이 바로 직전 조사인 2000년에 이어 꼴찌를 했다.
맨해튼 렉싱턴 애비뉴를 오르내리며 맨해튼과 브롱크스를 연결하는 5번 지하철은 다른 노선에 비해 고장이 특히 잦았다는 것이다. 또 역에 두 대가 잇따라 들어오거나 운행 간격이 너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전 러시아워에는 6분30초당 한 대, 한낮에는 10분에 한 대로 다른 노선에 비해 배치된 차량이 적었다. 러시아워에 빈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경우는 세 명당 한 명이 채 안돼 20개 노선 중 꼴찌에서 둘째였다.
뉴욕 지하철 요금은 구간에 관계없이 한번 타는 데 2달러다. 이 단체는 ‘과연 2달러 값을 하는지 보자’며 노선별 서비스를 금액으로 평가했다. 꼴찌인 5번 노선은 요금의 3분의 1인 65센트로 값이 매겨졌고 이를 포함해 7개 노선이 1달러가 안됐다.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L 노선은 1.30달러로 나왔다. 결국 모든 노선이 제값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하철 운행회사인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MTA)측은 스트랩행어스 캠페인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지난 통계를 사용하는 등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L 노선은 지난해 낡은 전동차를 새 것으로 바꿨다”는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이 단체의 보고서가 힘을 얻는 이유는 평가 내용이 실제 스트랩행어스의 경험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 브롱크스에 사는 세일즈우먼 주디 바리(23)는 “5번 지하철을 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면서 “다른 노선의 지하철을 서너 대 보내야 5번이 온다”고 말했다.
뉴욕 시내버스도 이 단체의 큰 관심사다. 러시아노프 변호사는 4월말 184개 뉴욕 버스노선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서비스 개선이 승객 증가에 못 미친다”고 표현했다. 시 전체로 주중 탑승객은 25% 늘었으나 차량 운행은 16%밖에 늘지 않았고 맨해튼의 경우 승객 24% 증가에 차량은 11%만 증가했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였다.
800만 뉴욕 지하철 통근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트랩행어스 캠페인은 뉴욕 지하철을 평가하고 요구하는 것만 아니라 죽어가는 지하철을 되살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 단체가 설립된 1979년 당시 뉴욕 지하철은 믿지 못할 대상이었다. 덜거덕거리는 전동차는 사고와 고장을 반복하면서 시민들을 괴롭혔다. 시민들은 지하철을 등졌고 이는 당시 쇠락하던 뉴욕시의 한 상징이었다.
이 단체는 1981년부터 ‘낡은 전동차 수리 기금’ 300억 달러가 MTA에 배정되도록 여론을 주도해 나갔다. 지하철 실태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를 통해 현실을 알리는 작업이 이들 시민회원들의 손으로 이뤄졌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지하철에서 내리면 버스를 공짜로 타게 해주는 제도나 일정요금으로 하루 종일 무제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1일 티켓 등이 우리가 제안한 것들”이라고 자랑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뉴욕시민을 다시 지하철로 불러들이는 데 기여했다.
이 단체는 지하철 내의 신문판매대를 없애고 지하도 내 악사와 예술가들을 내쫓자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로비를 벌여 성공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내 실현되도록 하는 게 이 단체의 생명력이다. 이 단체는 뉴욕 최대의 소비자 및 환경단체인 비영리법인 뉴욕 공익연구그룹(NYPIRG)의 일원이다.
홍권희특파원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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