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플란이 말러를 처음 접한 때는 196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지휘, 아메리칸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부활’을 들었다. 당시 그는 스물세 살의 평범한 음악애호가에 지나지 않았다. 말러와의 첫 만남을 그는 “벼락이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뉴욕 금융계에 막 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었다. 2년 뒤 그는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그를 세계 금융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의 대열로 끌어올렸다.
1983년 지난날 객석에 앉아 말러의 멜로디에 전율하던 젊은이는 40대의 나이에 지휘대에 섰다. 18년 전과 같은 카네기홀, 같은 아메리칸심포니오케스트라였다. 2년 동안 그는 ‘개인교사’를 들여 악보 읽기와 지휘법 등 음악공부를 매일 5시간씩 해왔다. 뉴욕의 ‘데일리 뉴스’는 이 사건을 1983년 공연계 10대 이벤트 중 하나로 꼽았다.
첫 공연을 마친 뒤 ‘지휘봉을 든 잡지사 회장’에게 연주 요청이 잇따랐다.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로열필하모니오케스트라, 키로프오케스트라 등 일류 악단들이 그의 지휘봉을 거쳤다. 1996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개막연주에 초대받는 영광도 누렸다.
이번 음반의 특징은 그와 음악학자 레나테 스타크보이트가 함께 작업해 만든 개정판 악보를 사용했다는 점. 말러가 악보에 수없이 덧붙인 연필 메모를 연구한 끝에 잘못된 악상표시, 강약표시, 음높이의 잘못 등을 바로잡은 악보다.
지금까지 카플란의 레퍼토리는 한사코 ‘부활’에 머물러 있다. 예외가 있다면 1992년 “다른 지휘자들이 말러 5번 교향곡의 4악장을 작곡가의 의도와 달리 너무 느리게 연주한다”며 이런 경향을 바로잡기 위해 음반으로 내놓은 정도. 사적인 축하모임에서 한두 번 지휘를 맡은 그의 세 번째 레퍼토리는 ‘생일축하 노래(Happy Birthday)’였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