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핀란드의 힘, 음악에서 나온다

  • 입력 2003년 9월 8일 18시 25분


핀란드 헬싱키 시내 시벨리우스공원 안의 시벨리우스 기념 조형물. 자연석 좌대 위에 올려진 그의 두상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고(오른쪽 아래), 대자연의 저음을 상징하는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그 옆에 세워져 있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핀란드 헬싱키 시내 시벨리우스공원 안의 시벨리우스 기념 조형물. 자연석 좌대 위에 올려진 그의 두상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고(오른쪽 아래), 대자연의 저음을 상징하는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그 옆에 세워져 있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신흥 음악 강국 핀란드. 인구 520만명에 직업교향악단만 30여개. 또 음악 전문축제 70여개에 음악 프로그램이 포함된 문화축제가 300여개. 사카리 오라모(38), 에사 페카 살로넨(45), 유카 페카 사라스테(47), 오스모 벤스케(50) 등 실력 있는 지휘자들을 배출한 나라다.

이제 핀란드는 전통적 음악 강국인 인구 900만명의 오스트리아를 뛰어넘어 독일의 아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무엇이 핀란드를 음악 강소국, 아니 음악 강대국으로 만든 것일까. 현지에서 그 저력의 비결을 알아보았다.

▽음악이 만들어낸 나라=“핀란드의 ‘나라 만들기’에 가장 중요했던 요소가 음악이죠. 국민 누구나가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헬레네 테포넨·미켈리 시립교향악단 매니저)

19세기 초 스웨덴에서 러시아 치하로 넘어간 식민지 핀란드의 민족 지도자들은 합창운동을 통해 집단의식을 고취했다. 1881년 헬싱키에서 처음 열린 ‘유벤스쿨레 합창축제’는 마을마다 아마추어 합창 열풍을 몰고 왔다. 핀란드 음악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린 작곡가 잔 시벨리우스(1865∼1957)가 1894년 발표한 교향시 ‘핀란디아’는 압제에 시달리던 국민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했다. 핀란드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독립을 선포했고 세계 각국은 핀란드를 ‘독립국으로서 자격이 있는 문화강국’으로 인정했다. 시벨리우스와 대지휘자 로베르 카야누스,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활동 덕분이었다.

▽국가의 지원=핀란드에는 ‘오케스트라법’이 있다. 1993년 제정된 오케스트라법에 따라 일정 요건을 갖춘 모든 오케스트라는 예산 중 25%는 중앙정부로부터, 60% 이상은 지방정부로부터 각각 지원받는다.

“오케스트라법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악단에 일체의 간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핀란드 국민 1명당 문화 관련 예산액은 유럽연합(EU) 국가 중 부동의 1위지요.”(페카 하코·음악평론가)

핀란드 음악 부흥의 ‘제2의 도약’은 1960년대 말에 이루어졌다. 카이 암베를라 핀란드 교향악협회 상임이사는 “경제부흥에 따라 예술가들에게 폭넓은 연금 혜택이 주어졌고 음악교육시설과 콘서트홀, 음악도서관, 교향악단 등의 설립과 축제 붐이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또 이 나라의 음악교육은 알차기로 유명하다. 150개의 음악학교에 5만명이 재학 중이다. 11개의 음악원에서는 수준 높은 전문 음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음악교육의 정점에 자리한 시벨리우스음악원은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독일 쾰른음대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청중과 밀착된 프로그램=300여개의 문화축제를 유지하는 비결은 늘 공연장을 채워주는 열성적 청중 덕분이다. 관객 취향에 맞춰 이 나라 음악공연 프로그램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레퍼토리는 대부분 18, 19세기 고전 낭만주의 음악작품들로 채워진다.

아울러 창작곡 연주도 활발하다. 핀란드 작곡계는 일찌감치 난해한 모더니즘 계열의 현대음악에서 탈피해 특유의 명상적인 ‘핀란드 현대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1997년 ‘백 인투 더 퓨처-작곡가는 악단의 일부’ 프로그램이 창설돼 14개 교향악단이 상주 작곡가를 두고 있다. 70년 이후 150여개의 창작 오페라가 선을 보여 ‘현대 오페라의 메카’로도 불린다.

헬싱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시벨리우스음악원 페카 바파부오리 교수 ▼

시벨리우스음악원 피아노과 페카 바파부오리 교수(58.사진)는 피아노 교육에 관한 권위 있는 저서를 발표한 음악교육 전문가. 로바니에미음악원, 오울루음악원을 거쳐 1999년 시벨리우스음악원으로 옮겨온 바파부오리 교수에게 핀란드 음악교육의 강점을 들어보았다.

―인구가 적은 핀란드에서 재능 있는 학생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재능 있는 사람을 발굴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한촌에도 수준 높은 음악교실이 있으며, 누구나 레슨비 걱정 없이 대학까지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 음악가들의 생활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음악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음악 수준도 높은데….

“음악교사 육성과정은 여러 음악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며,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악보 읽기를 배운다. 사회에서도 교회와 합창단 등을 통해 누구나 노래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라난다.”

―시벨리우스음악원은 특히 이름난 젊은 지휘자들을 많이 배출해 왔는데….

“지휘과의 전 주임교수 요르마 파훌라의 뛰어난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가 길러낸 지휘천재 유카 페카 사라스테는 호른 전공 학생이었는데 그의 연주를 듣고 파훌라는 ‘자네는 지휘를 하면 좋겠군’이라고 딱 골라낼 정도로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다. 핀란드 전역에 크고 작은 악단과 합창단이 있어 지휘자들에게 실습 기회가 많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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