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당시 육군 참모총장(사진)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몰아낸 게 1973년 9월 11일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8일 칠레 언론들이 쿠데타 당시의 화면과 증언을 앞 다퉈 보도하고 있으며 사진전과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리는 등 과거사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도좌파연정을 이끌고 있는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쿠데타로 아옌데 전 대통령이 숨진 이후 봉쇄됐던 대통령궁 문을 최근 다시 열었다.
아옌데 전 대통령은 1970년 사회주의자로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 그는 대기업과 천연자원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등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다가 미국과 국내 우파세력의 눈 밖에 났고,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쿠데타군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피노체트 정권의 17년 철권통치 아래 정치적 이유로 3200여명이 살해되고 1200여명이 실종됐다. 그의 강력한 시장경제 개혁이 90년대 초 칠레를 남미 최고의 고성장 국가로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는 60년대 토지개혁과 아옌데 정권의 국유화 조치로 지주 세력이 해체되면서 시장경제의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라는 상반된 해석도 있다.
영국에서 체포돼 2001년 인권유린 혐의로 기소됐던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재판을 받기에 심신이 적절하지 않다”는 법원의 결정으로 기소중지된 상태. 실형을 선고받은 군정 지도부 40여명도 군부가 운영하는 감옥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어 과거사 청산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인권단체들은 칠레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 군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9명의 당연직 상원의원 가운데 4명이 군부 몫이며, 정책 결정기관인 국가안보위원회(8명)에도 군 지휘관이 절반이나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 야당의 반대로 헌법 개정에 필요한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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