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올해 3, 4월 비전투부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국론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점에 비추어 여야는 일단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청와대도 유엔의 태도와 국민 여론 등 국내외 정세를 살피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유엔의 태도가 중요 변수”=청와대는 국제정세와 국민여론, 정치권의 반응 등 여러 요소를 놓고 파병 요청 수용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정확히 보고를 다 받았으며 상당한 시간을 두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어느 것이 국익에 가장 적합한가를 따져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문 실장은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유엔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도 변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유엔이 이라크에 파병할 전투병(치안유지군)을 평화유지군(PKF·peace keeping forces)으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라크 파견 전투병이 PKF로 규정되면 국제사회의 평화유지 분담 요청에 부응한다는 명분이 분명해질 뿐만 아니라 파병에 반대하는 일부 국내 여론도 상당히 누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김희상(金熙相) 국방보좌관 등이 파병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이미 비전투병을 파병한 만큼 추가 파병은 불필요하다”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먼저 총대 안 멘다”=올봄 이라크 파병을 적극 지원했던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부의 입장 표명을 지켜본 후 한나라당의 입장을 결정한다는 신중한 방침을 정했다.
다만 13일 방미 길에 오른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워싱턴에서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과 비공식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핵심당직자는 “미국이 원내 제1당의 수장인 최 대표에게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럴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방미에 앞서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 대표가 미국측의 파병 협조 요청에 대해 즉각 긍정적 답변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최 대표 측근들의 전언이다.
최 대표는 방미에 앞서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에 대한 정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먼저) 입장을 밝힐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최 대표측은 방미 준비 기간 중 파병 문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지만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별다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분사태 재연 우려=민주당은 15일 최고위원 상임고문 연석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대철(鄭大哲) 대표도 “유엔의 이름으로 ‘PKF 파견’을 요청한 것이라면 적극 고려할 수 있는데 이번 건은 미국이 직접 요청한 것이어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이라크전 파병 논란 때 의원들의 개인적 이념과 정책 성향에 따라 찬반 의견이 갈렸던 내분 사태가 이번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김근태(金槿泰) 김성호(金成鎬) 배기선(裵基善) 이미경(李美卿) 허운나(許雲那) 의원 등 신당파 5명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추가 파병은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며 “신당의 창당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적극 저지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신당파 핵심 멤버인 남궁석(南宮晳)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동맹이다. 한반도에 안보상 문제가 생기면 주한미군 3만7000명이 목숨을 내걸고 우리를 위해 싸울 것 아닌가”라며 파병을 적극 지지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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