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두 오케스트라
레닌그라드가 있었다. 1943년 127일간 독일군에 포위된 끝에 150만명의 사망자를 내고서야 해방된, 그러나 그 뒤에도 엄혹한 탄압과 규제 속에 갇혀 있던 도시였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다. 구소련 붕괴의 혼란 속에서 레닌그라드를 버리고 옛 이름을 되찾은 도시다.
예전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권위로 무장한 상임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단련한 오케스트라였다. 이 악단의 일사불란한 금관 소리는 동토를 가르는 바람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름을 바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이 있다. 단원들을 존중하는 민주적 지휘자 테미르카노프 아래 옛 러시아 궁정의 온화한 사운드를 찾아나가고 있다. 이 악단의 현은 서구 악단들보다 더 유려하고, 모든 악기가 한데 울릴 때의 균형감은 금실로 수놓은 비단 같다.
레닌그라드 필 시절 이 악단은 용광로에서 정련된 듯한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집을 DG사에서 내놓아 음반 팬들 사이에 숭배의 대상이었다. 디지털 시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이 테미르카노프의 지휘봉 아래 RCA 레이블로 선보인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의 균형 잡힌 명연들도 ‘새로운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 테미르카노프, 임동혁, 시트코베츠키
1988년 테미르카노프는 므라빈스키의 사망 이후 단원들의 민주적 투표를 통해 새 상임지휘자로 선출됐고 15년째 악단은 순항 중이다.
사실 그는 2년 전 런던 필의 서울 공연에서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다. 당시 컨디션 난조에 빠졌던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 대신 일본 순회 연주 중이던 그가 도쿄에서 서울로 급히 날아와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인연이 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2001년 롱티보 콩쿠르의 우승자이자 올 6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3위 수상을 거부해 파란을 일으킨 인물. 지난해 EMI사에서 내놓은 데뷔 음반에 이어 새 음반을 준비 중이며 21세기 유망주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다른 협연자 시트코베츠키는 음반을 통해 많은 골수팬들을 확보한 명인. 바이올린 외에도 지휘와 편곡을 넘나들고 여러 음악축제의 감독을 맡아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4만∼14만원.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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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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