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각료회의 선언문 초안]“협상끝날때까지 시신인도 거부”

  • 입력 2003년 9월 14일 18시 36분


멕시코 칸쿤에서 농업 개방에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경해(李京海)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련) 회장의 유가족이 시신 인도를 거부해 장례 과정을 둘러싼 또 다른 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이씨의 자살을 계기로 한국 농민단체가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 세계무역기구(WTO) 시위를 주도하고 있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현지에 도착한 이씨의 장녀 지혜씨는 부친의 시신을 확인한 뒤 “WTO 협상 반대를 외치다 숨진 부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은 시신을 인도할 수 없다”며 시신 인도 확인서에 서명을 거부했다. 그는 “WTO협상 반대 투쟁을 위해 협상이 끝날 때까지 부친의 시신을 현지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당초 한농련 관계자들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는 한국시간으로 19일 서울 국립경찰병원에서 세계 농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지 한국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협상 결과가 한국 농업에 불리해 이지혜씨가 뜻을 굽히지 않으면 장례 절차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편 칸쿤에서는 13일 20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WTO 각료회의 회의장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시위대가 철제 바리케이드를 뚫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강기갑 의장은 “한국농민과 세계 민중들을 죽이는 WTO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낮 세계민중대회에 참가한 시위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이씨가 자살한 칸쿤 중앙광장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를 열었다.

칸쿤(멕시코)=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한국 개도국 포함안돼 농업개방 적극 나서야”▼

“세계는 시장개방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에 참석한 프란츠 피슐러 유럽연합(EU) 농업담당 집행위원(사진)은 12일(현지시간) 멕시코 칸쿤 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국가가 시장원리에 맞도록 내부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국가도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고집해서는 세계 통상 무대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EU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이 수세에 몰리게 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EU는 한국과 함께 NTC그룹(환경 사회 등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주장하는 6개국)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손잡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피슐러 집행위원은 “EU는 공동농업정책(CAP)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등 농업부문의 개혁을 해왔다”고 말했다.

EU가 개혁의 고통을 감수한 만큼 한국과 같은 농산물 수입국도 경쟁력이 없는 농업부문을 재편하라는 요구이다.

한발 더 나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고 밝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한국이 농산물 시장개방의 특혜를 누리는 개도국 지위를 얻기 어렵다는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또 브라질 인도 중국 등 농산물 수출 개도국인 G22그룹과 농업개방에 소극적인 한국 일본 등 G10그룹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는 “다자(多者)간 협상에서 현실성이 없는 주장을 계속하면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 등 관세 상한 설정과 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TRQ) 증량을 반대하는 G10그룹에 대해서 “다양한 선택을 놓고 탄력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EU 등 선진국의 보조금 감축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며 “이 같은 선진국의 양보는 개도국과 다른 농산물 수입국들의 농업 구조조정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칸쿤(멕시코)=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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