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소비자물가는 0.2%(전년 동월대비) 떨어져 2001년 이후 하락률이 가장 작았다. 일본 정부는 “이런 추세라면 9, 10월경 물가상승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은행도 물가상승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당분간 물가가 오르더라도 돈줄을 죄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슨 수를 써서든 물가를 올려 경기를 부추기려는 일본의 ‘눈물겨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물가 올라도 돈 푼다”… 결연한 일본 금융당국=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앞으로 몇 달간 계속 물가가 올라도 시중에 돈을 푸는 현재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회복 기미가 확연해지면서 금융완화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서둘러 쐐기를 박은 것.
몇 년간 ―1∼―2%선을 넘나들던 소비자물가는 올 들어 미미하나마 낙폭을 줄여가고 있다. 전력 교통 등 공공요금이 제자리인 상태에서의 수치여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올여름 냉해의 영향이 쌀값에 본격 반영되는 9월이나 10월엔 물가상승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희망 섞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1400조엔에 이르는 개인금융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비를 하지 않는 국민에게 ‘이제부터 물가가 오른다’는 신호를 보내 소비를 자극할 것이라는 것.
일본은행은 ‘물가상승→인플레 기대심리 확산→소비 증가→기업실적 개선→디플레 탈출’의 선순환 구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소비의 양극화 두 얼굴=일본의 디플레 탈출이 임박했다는 기대감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18일 닛케이 평균주가는 4일 연속 상승, 전날보다 43.21엔 오른 11,033.32엔으로 마감해 연중 최고치 기록을 이어갔다.
내각부가 이날 발표한 7월 경기동향지수는 80(50 이상이면 호조)으로 경기가 상승국면임을 재확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4월의 0.8%에서 최근 2.0%로 높였고 일본 정부는 3%대 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중심으로 지갑을 푸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모든 물건을 100엔(약 1000원)에 파는 ‘100엔숍’에 여전히 손님이 몰리고 할인경쟁도 치열하지만 주가상승과 함께 고가품 소비가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기미가 뚜렷하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사고방지장치 등을 장착해 표준모델보다 80만엔 이상 비싼 차량이 더 잘 팔린다.
할인공세에 치중하던 백화점 업계도 구매력이 있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겨냥해 매장 구조를 세련되게 바꾸는 등 고급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다만 고가품과 저가품만이 잘 팔리는 소비의 양극화는 여전해 중산층의 향배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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