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의 초점은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 관련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강대국끼리 사전에 조율하자는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유럽 빅3’ 정상은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시라크 대통령, 슈뢰더 총리와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6일경 연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유럽 빅3’ 회동=이라크전쟁에 참가했던 영국과 전쟁에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 정상은 전쟁 이후 첫 3국 정상회담을 갖고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풀었다. 3국 정상은 이라크 전후 처리 과정에서 유엔이 ‘중요 역할(Key Role)’를 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이라크의 주권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이라크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주권 이양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몇 달 이내’를 주장한 반면 블레어 총리는 ‘이양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블레어 총리는 유럽 내 ‘미국의 대변자’ 역할을 해 왔으며, 미국은 이라크 신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미국 주도의 과도통치위원회(CPA)가 이라크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
이견에도 불구하고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회담이 끝난 뒤 한 영국 기자가 블레어 총리에게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느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가 “블레어는 블레어”라고 대신 옹호해 주기도 했다.
▽직접 나선 부시 대통령=부시 대통령은 23일 뉴욕에서 시라크 대통령 및 슈뢰더 총리와 각각 만나 미국이 제출할 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그는 19일 밤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도 전화를 했다.
부시 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새 유엔 결의안은 다음주 화요일(23일)까지 마련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3일 두 정상과의 ‘협의’를 거친 후 결의안을 확정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도 ‘명예롭게’ 미국의 손을 들어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6∼27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만날 푸틴 대통령도 20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창설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혀 부시 대통령의 걱정을 덜어줬다.
▽결의안 전망=유엔 관측통들은 결의안이 이달 안에 채택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의안 내용은 이라크 군사 문제는 미국 주도로 하되 정치 경제 문제는 유엔 등 다자 참여 구도로 짜여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라크 전후 처리를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미국 방침과 유엔이 주도해야 한다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의 생각이 절충된 결과로 보인다.
군사 문제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문제에 개입하면 자국군의 파병이 불가피해지기 때문. 러시아와 중국도 이라크전쟁 때보다는 유화적이다.
한국 외교안보연구원 김태효 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핵 6자회담 구도에 들어와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의안은 결국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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