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치사율 9.6%는 사스 바이러스 감염자의 9.6%가 사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이러스를 보유하면서도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치사율은 훨씬 낮을 것이라는 것이 감염의학자들의 견해다.
그로부터 3개월, 우리는 사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게 됐는가.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사스 환자가 발생하고 날씨가 서늘해져 사스 재발위험이 높아지면서 방역당국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지난 30년간 수십여 종의 신종 전염병이 출현했으며 바이러스는 매년 변이를 일으켜 인류를 위협한다. 올가을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활동과 시기를 맞춰 사스 바이러스가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릇된 욕망이 사스 불렀다=사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처럼 조류(鳥類)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연구를 통해 지나친 ‘보신(補身) 욕망’이 사스의 원인이란 것이 입증되고 있다.
지난달 홍콩대와 중국 광둥성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의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광둥성의 식용 야생동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사향고양이, 너구리, 흰족제비 등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채취했다. 연구팀은 이 바이러스를 사람의 몸에 있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비교한 결과 유전적으로 99.8% 동일한 것으로 확인했다.
결국 식용 야생동물로부터 사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진 것으로 확인된 것. 다만 이들 야생동물이 바이러스의 최초 진원지인지, 어떻게 해서 사람에게 옮겨진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뱀이나 야생 오소리 등에서도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예방-치료 가능한가=WHO가 4월 사스의 병원체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발표한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고 있지만 아직 예방백신이나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감염경로에 대해서도 ‘비말(飛沫)’이라 부르는 작은 침방울을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스 감염환자의 기침 또는 재채기를 통해, 말할 때 배출되는 침방울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 환자의 체액이나 대변 등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잠복기는 2∼7일로 사람마다 다르지만 최장 잠복기는 10일 정도. 국내 방역당국은 사스를 제4종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또 사스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하면 즉각 신고하도록 했으며 검역을 거부할 경우 고발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사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염위험지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고 손 씻기를 강화해 직접 접촉에 의한 감염을 막는 방법을 권하고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태다.
▽사스 진단 기준 달라졌다=WHO는 그동안 의심환자, 추정환자로 나누었던 사스의 기준을 변경했다.
우선 사스로 의심되는 경우 임상적인 관찰을 통해 사스(임상적 사스)로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WHO는 △38도 이상의 고열이 있고 △기침 호흡곤란 등 1개 이상의 호흡기 증상이 있으며 △방사선 촬영 결과 폐렴이나 호흡곤란증후군(RDS)으로 볼 수 있는 폐침윤 현상이 있으며 △해당 질환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병명이 없을 경우 바로 사스로 진단하도록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스 의심지역을 여행했을 경우’라는 조건이 빠진 것. WHO는 사스가 더 이상 한 지역에 국한되는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이 조건은 무의미하다며 이번 진단기준에서 삭제했다.
▽위험 지역 재분류-비상경고시스템 도입=최근 WHO는 사스의 발병 위험도와 관련해 전 세계를 △재출현가능지역 △인접지역 △저위험지역 등 3개의 지역으로 나눴다.
재출현가능지역은 사스의 감염원으로 밝혀졌거나 동물에서 사람으로 사스 바이러스가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베트남 대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접지역은 재출현가능지역과 인적 교류가 많은 곳이며 저위험지역은 그동안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해외유입환자만 보고 된 곳이다. 한국은 저위험지역에 해당하지만 국립보건원은 인접지역에 준해 관리하기로 했다.
WHO는 또 사스 재발 및 확산을 막기 위해 사스경고시스템(SARS Alert)을 도입했다. 동일한 의료기관에서 10일 사이에 ‘임상적 사스환자’가 2명 이상 발생했거나 같은 기간 병원 직원과 방문객을 포함한 모든 출입자 중에서 ‘임상적 사스환자’가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1차로 경고시스템이 발령된다. 이어 방역당국은 WHO에 이를 보고하며 WHO는 필요시 전 세계적으로 경고발령(Global Alert)을 내리게 된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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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주사 맞으면 사스예방?▼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인플루엔자(독감) 예방백신을 맞으라는 권고문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캠페인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예전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이달부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의원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면 사스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실제 일부지역에서 백신이 동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말 주사 한 대로 사스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일까.
국립보건원은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국립보건원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는다면 사스 감염 여부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10월 무렵 찾아오는 인플루엔자는 전 세계 인구의 10∼20%를 감염시킨다. 전체적으로 30만∼50만명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하면 70% 정도가 6개월 동안 ‘사실상’ 완전 면역이 가능하다.
인플루엔자의 증상과 사스 초기 증상은 고열, 호흡기 질환 등으로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접종을 받은 사람이 이런 증상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사스에 걸렸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가 된다.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권고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사스 진단이 쉬워진다는 것.
그러나 일부 의학자들은 이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플루엔자는 주로 아이와 노인 등 노약자에게 주로 걸리는 반면 사스의 경우 지난번에 창궐할 때에도 아이들은 많이 비켜 갔으며 오히려 건강한 30, 40대에서 많이 나타났다는 것. 따라서 모든 사람이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면 ‘감별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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