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의 전쟁=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40)의 남편인 조지프 윌슨 전 가봉 주재 미국대사(53)는 “7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중 ‘이라크가 우라늄 구입을 시도했다’는 대목이 사실무근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백악관이 아내의 신분을 흘렸다”며 ‘부시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윌슨 전 대사는 1990년부터 91년까지 이라크 주재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서 ‘용기 있는 외교관’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
그는 아내의 신분을 흘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이 자신의 아내를 ‘금지 대상에서 풀린 좋은 사냥감(fair game)’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로브 정치고문과 통화한 기자들에게서 그 같은 사실을 들었다는 것.
그렇다면 그의 부인은 진짜 CIA 비밀요원일까.
윌슨 부부와 CIA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칼럼에서 플레임씨의 신분을 최초로 보도한 로버트 노박은 정보분석가(analyst)라고 주장했지만 CNN 방송은 1일 플레임씨가 해외에서 수년간 활동한 비밀요원(operative)이었다고 보도했다.
▽여론은 특별검사=워싱턴 포스트는 ABC 방송과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69%가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2일 보도했다. 특히 응답자의 72%는 백악관 직원이 신분을 누설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무부가 공식 조사에 나섰는데도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일 “백악관 직원들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도 응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NYT ‘CIA요원 신분누설’ 관련 칼럼▼
‘그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Him).’
퓰리처상을 탔던 저명 칼럼니스트인 뉴욕 타임스의 모린 다우드가 2일자에 쓴 글의 제목이다. 다우드는 백악관이 중앙정보국(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흘렸다는 의혹(리크 게이트)과 관련, “백악관은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고 압박했다. 다음은 칼럼 요약.
영화(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영화처럼 멋지게 만나는 대신 그들의 만남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플레임과 조지프 윌슨은 우연히 워싱턴에서 마주쳤다. 비행기 스케줄까지 겹쳤고 외국인들로 붐비는 칵테일파티에서 금세 서로를 알아봤다.
“정말 아름다운 금발이었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반한 듯한 목소리로 윌슨은 그때를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을 에너지 분석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첫 키스를 할 때쯤 자신이 CIA 요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지금 워싱턴은 어떻게 매력적인 CIA 비밀요원과 전직 외교관인 윌슨이 웨딩케이크에서 ‘옐로케이크(우라늄광)’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떠들썩하다. 윌슨은 뉴욕 타임스 독자기고를 통해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샀다는 주장의 허구를 폭로하는 자신의 보고서를 행정부가 덮어버렸다’고 폭로, 부시 행정부를 난처하게 했다.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지 못한 부시 행정부는 급기야 (윌슨을 파괴하려는) ‘개인살상무기(WPD)’로 눈을 돌렸다. WMD 추가 수색 비용으로 6억달러를 요구하더니 이제 ‘크로퍼드(목장에서 만들어낸) 매카시즘’까지 꺼내들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의 신뢰와 청렴을 되찾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최근 모습은 ‘범인을 찾아나선’ O J 심슨을 연상시킨다. 백악관은 누가 누설했는지 알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결정만 내리면 된다. 윌슨의 책상에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작전 당시 그는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보낸 그의 업적을 칭찬하는 편지도 보였다. 윌슨은 셋째 부인인 플레임이 TV에서 CIA 요원 역을 맡은 제니퍼 가너의 ‘실재 인물’ 같다고 말했다.플레임과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은 같은 성공회 교회에 다닌다. 아내의 만류로 윌슨은 ‘로브가 수갑을 차고 백악관에서 쫓겨났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한층 완곡한 어투로 바꿨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천재’라고 부르는 로브가 이번 일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분명 로브는 이런 일(칼럼니스트가 플레임의 이름을 공개한 것)이 일어난 것을 눈감아줬을 것이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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