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시아파, 反美로 가나…무장조직 "독자내각"선언

  • 입력 2003년 10월 13일 20시 04분


“전쟁이 잠자는 거인 시아파를 깨웠다.”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4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분석가 칼레드 빈 수라이만 알술라이만이 던진 이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전체 국민의 약 65%를 차지하면서도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의 탄압으로 숨죽였던 시아파가 대규모 성지 순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동시에 10일 ‘대안내각’ 구성을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시아파 무장조직 ‘메흐디 군’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 모크타다 사드르(30)는 이날 미군 주도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대신해 이슬람을 근간으로 하는 대안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법무, 재무, 정보, 내무, 외교, 종교적 기부 및 덕의 함양과 악의 예방을 책임질 각료들을 확정했다는 것.

AFP 등 외신들은 사드르의 이 선언이 과도통치위에 대한 정면도전 시도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야드 알라위 과도통치위 의장은 “사드르는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정통성은 과도통치위가 갖고 있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시아파 본거지인 바그다드 남부 나자프에서도 불과 수백 명이 사드르의 대안내각 구성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을 뿐 아직 큰 호응은 없는 상태다.

그러나 시아파의 정치세력화 움직임 자체가 미국과 과도통치위에는 큰 위협이다. 사드르의 발언은 또한 시아파 내 온건파 지도자인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이 8월 말 폭탄테러로 숨진 뒤 벌어진 시아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가장 큰 위협은 후세인 정권 지지자였지만 이제 미국에 호의적이었던 시아파 가운데 사드르의 추종자들이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드르의 대안내각 발언에 맞춰 시아파의 무장저항단체인 ‘이맘 알리 지하드 여단’은 12일 동영상이 담긴 CD를 배포하면서 외국 주둔군과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설사 아랍국 군대라 해도 이라크에 주둔하면 점령군으로 간주하고 싸우겠다는 것.

이 CD에는 중무장한 남자 5명이 과도통치위원 24명을 포함해 미군에 협조하는 이라크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성명을 낭독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