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매니저라기보다 열혈 팬 수준이었어요. 강한 울림과 깊은 소리, 애환을 담은 라틴 음악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죠.”
1998년 5월, 그는 무작정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담당자를 찾아가 시사이의 무료공연을 제안했다. 역 광장에서 거리공연 방식으로 이뤄진 첫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지하철 예술무대’의 스타로 떠오른 시사이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주 소리축제 등에서 단독공연을 열었고, 올해에도 10월 21일 서일대 축제와 22∼24일 부산지하철 서면역에서 ‘열린 음악회’를 갖는다. 내년에는 아시아 5개국 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수지상으로는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연 6개월간 한국에 머무는 시사이의 출연료 항공료 체류비 등을 챙겨주면 지갑은 텅 비기 일쑤라는 것.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멤버들을 우리 집에서 먹이고 재울 정도죠. 돈 생각하면 이 일 못해요. 공연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내 삶의 이유를 찾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3남매 중 첫째인 그는 가족 중 ‘최단신(1m23)’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그늘’을 찾기는 어렵다. 씩씩하게 악수를 하는 게 그렇고, 시종일관 얼굴에 피어나는 ‘하회탈 미소’가 그렇다.
“장애인은 스스로 갇혀있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 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이젠 일반인의 ‘낯선 시선’을 이해하면서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요. 서로 눈과 마음이 익숙해지면 인간적인 유대감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는 콜롬비아, 페루 등 외국 친구들 앞에서 정열적인 춤을 선보일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키가 조금만 컸으면 이사도라 덩컨을 능가하는 무용수가 됐을 것”이라고 호언하던 김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멋진 인생을 살겠다”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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