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2세의 짧은 생애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정복자다.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 형성의 단초를 제공해 세계사에 거보를 남긴 그의 이름은 어느덧 역사를 넘어 신화가 됐다.
‘알렉산더 신화’ 중에서도 신비로운 것은 그의 죽음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비롯한 후세 역사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을 이렇게 전한다.
동성애 취향이 있던 대왕은 BC 324년 친구이자 연인인 헤파이스티온이 죽은 뒤 비통해 하며 폭음을 계속한다. 8개월 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바빌론에 머물던 대왕은 여느 때처럼 폭음을 한 뒤 쓰러져 12일 동안 고열을 앓다가 죽는다. BC 323년 6월 11일이었다.
역사를 바꾼 인물의 죽음 기록치고는 어딘가 허전하다. 다만 그가 죽기 전 ‘하늘에서 까마귀끼리 서로를 쪼다가 대왕의 발 앞에 떨어져 죽었다’는 흉조(凶兆)가 있었다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전한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2300여년 만에 영국의 한 방송제작사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푸는 데 도전했다. 런던에 있는 ‘애틀랜틱 프로덕션’이 최근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역사가와 법의학자는 물론 독극물 전문가와 런던 경시청 민완형사 출신까지 동원, 오랜 세월 묻혔던 왕의 죽음을 끄집어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매거진 최신호는 장문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를 소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먼저 대왕의 폭음에 주목했다. 대왕은 세계 전쟁 사상 가장 대담한 전략으로 연승을 거두었으며, 언제나 선봉에 섰다.
이 때문에 그의 머리와 가슴, 다리에는 부상을 달고 다녔다. 계속된 폭음이 상처를 곪게 하고, 고열을 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다혈질의 대왕이 음주에서도 ‘선봉’에 섰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폭음을 즐겼던 대왕이 어느 날 갑자기 술 때문에 못 일어나게 됐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질병? 흔히 알려진 대로 말라리아가 아니었을까?
미국 버지니아주 전염병국 국장인 존 마르 박사는 “대왕의 증세는 당시 그 지역에 돌았던 뇌말라리아와 비슷하다”면서 “그러나 뇌말라리아의 경우 혈액과 오줌이 검게 변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마르 박사는 “장티푸스 역시 증상이 비슷하나 붉은 반점이 보였다는 기록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는 플루타르크가 쓴 ‘흉조’에도 눈길을 돌렸다. 1999년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에서도 까마귀와 맹금류 등이 비슷한 증상으로 죽어갔다. 원인은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사람, 특히 젊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일은 드물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독살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대왕은 적이 많았다. 술 취한 채 말싸움을 벌이다 부왕의 오랜 친구를 창으로 찔러 죽였으며, 헤파이스티온을 살리지 못한 의사를 십자가에 매달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인이 주로 사용하던 비소나 독미나리 같은 독약을 사용할 경우 대왕이 죽기 전 보였던 증세와 맞지 않는다.
뉴질랜드 국립 독극물 센터의 레오 수 박사가 해답을 찾아냈다. ‘크리스마스로즈’라 불리는 유럽산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인 헬르보어(Hellebore)였다. BC 1100년경부터 헬르보어 즙은 서양 고대문명 지역에서 변비치료제로 사용됐다. 미량의 헬르보어는 약이 되지만 한 티스푼 이상의 헬르보어 즙은 치명적인 독약이 된다. 혈압을 떨어뜨리고 고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
다큐멘터리는 대왕의 원정 동안 마케도니아 통치를 맡았던 안티파테르 장군 일가를 독살범으로 지목했다. 대왕의 분노를 사 바빌론으로 소환당한 안티파테르의 아들 이올라스는 공교롭게도 대왕의 음식담당 집사였다. 이올라스가 만취한 대왕의 술에 헬르보어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올라스의 형 카산데르는 대왕이 죽자마자 왕비와 모후, 왕자를 살해했다.
하버드 의대의 해롤드 버치타인 박사는 대왕의 죽음을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설명했다.
“어려서 부왕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대왕은 병적으로 정복에 매달렸다. 헤파이스티온이 죽은 뒤는 전쟁 아니면 폭음이었다. 점점 더 괴팍해진 대왕은 주변 사람을 두렵게 했다. 어쩌면 대왕은 그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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