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최근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1년 전 모스크바 뮤지컬극장 인질사건 진압 당시 러시아 당국이 살포한 독가스에 의식을 잃고 어디론가 이송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그것.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저스틴 서트클리프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최근 월드프레스포토2003의 스폿뉴스부문상을 받았다. 선데이 텔레그래프측은 주인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 여성의 생사와 행방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난해 10월 23일 40명의 체첸반군이 공연 중인 극장을 점거해 관객 등 912명을 인질로 잡고 “체첸에서의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며 벌였던 사상 초유의 인질극은 3일 만에 러시아 당국의 무차별 진압으로 끝났다. 희생자는 무려 170명.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의혹에 가려 있다.
러시아 당국은 정확한 희생자 수를 발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도 진압에 사용한 가스의 성분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23일 모스크바 시정부는 사건 현장에 10만달러를 들여 추모비를 세웠다. 그러나 유족과 피해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지루한 법정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체첸반군의 책임’이라며 외국인을 포함한 희생자 보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
러시아 정부는 사망자 가족에게는 10만루블(약 400만원), 생존자에게 50만루블의 위로금만 지급했다.
구출 당시 독가스로 의식을 잃고 응급조치도 없이 인근 병원으로 분산 수용됐던 생존자 중 상당수는 기억상실증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이달 5일에는 선거를 통해 체첸에 친(親)러 정권을 수립했으나 반군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어 인질극의 원인이었던 체첸 사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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