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개념을 도입한 훙스실업의 판스이(潘石屹·43·사진) 총경리(사장)는 중국 주택업계의 ‘아방가르드(선구자)’로 불린다. 중국인들의 삶의 변화를 한발 앞서 감지하는 동물적 후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초반까지 중국 사회에서 가정과 일터는 별개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판 총경리는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 두 가지가 합쳐질 것으로 내다보고 1996년부터 SOHO 건설에 착수했다. 중국 IT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베이징에는 소규모 창업이 줄을 잇고 있었다. 주변에선 고가의 첨단 SOHO는 뉴타운이 아니라 ‘고스트 타운’이 될 것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객을 참여시켰고 가장 팔기 어려운 1층과 최고층에는 아담한 정원을 덤으로 붙였다. 거기에 ‘SOHO 품질에 불만이 있다면 전액 환불한다’는 파격적 조건도 내걸었다.
결과는 대성공. SOHO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지상과 맨 위층은 다른 층보다 30% 더 비싸게 팔았다. 반품된 SOHO는 고작 10개. 그것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내놓은 것이었다.
공산당과의 인맥을 통해 세(勢)를 키운 다른 부동산 재벌과 달리 그는 빈한한 서부 내륙 간쑤(甘肅)성 출신이다. 내세울 것은 최고 명문 베이징대 공대를 졸업한 우수한 머리뿐. 1984년 중국 석유부에 입사했지만 공무원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하이난(海南)성에서 빌라 건축으로 목돈을 거머쥔 그가 베이징에 돌아온 것은 90년대 초반. 푸청먼(阜成門) 지하철 근처에 현대적 감각의 상가를 건설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베이징 외곽 만리장성 터인 옌칭(燕慶)지구에 세운 빌라는 지난해 9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훙스실업의 탁월한 설계능력은 그와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에서 영입한 다국적 전문가들의 시너지 효과 덕택이다.
그는 작업실을 떠나면 불교나 철학서적을 탐독하며 설계구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때로 베이징 도심의 야간 위성사진을 바라보며 투자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의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에 이 같은 ‘기행(奇行)’이 맞물려 판 총경리는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으로 떠올랐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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